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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단 결사대 기념탑 계룡산 신도안은 산천이 풍부하고 백성이 손순遜順하여 큰 뜻 품은 은둔지사가 후천선경後天仙境의 주도적 구실을 담당할 소명을 키워나가던 곳이다. 일제의 침략과 국망에 처하여 우국지사들은 이곳 신도안에 모여 비밀결사대를 조직하고 항일투쟁의 기지로 삼았다. 한훈 나철 기산도 윤이병 이상학 등이 그들로 1907년 이곳에서 회합하고 을사오적의 처단을 준비하였다. 한훈은 1913년 채기중 유창순 유장렬 등과 풍기광복단을 조직하고 1915년에는 박상진 등과 함께 광복회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금과 친일파 처단에 전력하였다. 광복결사대는 김한종 박상진 채기중 등 광복회원 수십 명이 체포되자 한훈이 안창호를 비롯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협의하여 1920년 조직한 항일단체이다. 대장 한훈은 박문용 등과 군자금을 모금하고 김상옥의 암살단과 연합하여 미국의원단의 방한을 계기로 삼아 조선총독과 일제고관들을 처단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왜경에 체포되어 20년 간 혹독한 옥고를 치렀다. 이들은 해방 후 독립정신에 입각하여 국민의 평등과 공복公福 그리고 민족의 통일을 건국이념으로 내세우고 거룩한 애국혼을 불러일으키고자 광복단을 재건하였다. 재건된 광복단은 서울 견지동에 총본부를 신도안에는 지부를 두었다. 신도안 지부에서는 중봉산 뒤의 충렬사忠烈祠에 순국선열봉안소를 설치하고 임시정부에서 정한 순국선열기념일에 매년 관민 합동으로 추도제를 거행하였다. 대한민국 국방의 본산인 이곳 계룡대 앞 무궁화동산에 광복단 결사대기념탑을 세우나니 선열의 위국충정을 현창하고 자주적인 민족통일의 초석을 만들고자 함에 그 뜻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