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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독립국인 대한제국의 주권을 무력으로 강제 찬탈한 침략주의 일본이 강제통치로 말미암아 암흑과 극고에 신음하던 한민족은 마침내 서기 1919년 3월1일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임을 세계만방에 선언하고 일제히 궐기하여 독립만세를 고창 방방곡곡에 태극기의 물결을 일으켰으니 이 의거를 이름하여 역사는 "3.1독립운동"이라 기록하였다. 우리고장 목포에서도 역사의 소명아래 박상열의 주도로 이해 4월8일 상오 10시를 기해 시민과 학생이 총궐기 독립선언문과 경고문을 살포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절규하여 일제를 진감 시킴으로써 한인의 독립혼을 중외에 과시 천명하였다. 귀축과 같은 일제헌병과 경찰은 열사 80여명을 체포 투옥하여 천인공노할 고문을 자행 박상술 서지현 양열사는 고문으로 분사하였고 40여명의 열사는 일제 법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영어의 몸이 되어 주권잃은 국민의 처절한 슬픔을 반○하였다. 혹독한 노역에서 플려난 박상열은 중국에 망명 상해임시정부 독립군자금조달 임무를 맡아 수차 국내에 잠입 밀약중 일경에 발각되어 재차 옥고를 치루었고 여타 열사들도 일제의 간단없는 감시아래 신고와 간난의 세월을 보냈다. 여기 3.1독립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돼새기고 향리열사들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자유를 갈구 투쟁한 자주민의 강한 의지를 현창하여 후손의 의표로 삼고자 역사의 이름으로 이 탑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