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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로서의 업적 1919년 : 평안북도 연변의 숭덕학교에 재직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교내의거에 가담, 평양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룸. 1924년 : 도산 안창호의 흥사단에 가담, 죽을 때까지 변함없는 동지로 지냄. 1931년 : 만보산사건을 계기로 수양동우회사건을 조직하여 1938년 11월까지 1년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룸. 1942년 : 10.1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홍원경찰서 유치장에서 1년 동안 온갖 악형을 받았으며, 치안유지법 위반죄(내란죄)로 기소되어 함흥 검사국에 이관, 수감생활. 1943년 : 12월 8일 새벽 5시 심한 고문과 추위와 주림 속에서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차디찬 감방에서 향년 56세로 순국. 묘지는 1973년 봄 경복 달성군 다사면 이천리에 이장. 1962년 : 3.1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며 「노산 이은상」은 그의 행적을 들어 성인으로 추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