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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법린의 민족의식 형성과 실천 73 본론 - 1 쪽 일제 강점 이후 17년간 한민족의 경 제 손실 통계. 5식구 가정이 연간 200 마르크로 생활이 가능한지 반문. - 1쪽 한국에서 일본의 경제․문화 정책 속셈. - 0.8쪽 일본 정책의 현실(박해 사례). 결론 - 0.5쪽 1919년 3월 1일 한국인의 독립 선언 과 일본의 대응. 자유를 위한 투쟁 의 지 천명. 저자에 관한 기록이 없지만, 경제정책 분석 내용이 절반을 차지하는 것을 볼 때 글의 주무자는 경제학 전공자와 관련 있을 것이다. 유덕고 려학우회원 가운데 이극로와 황우일이 같은 베를린대학 경제과 동문이 었고, 김필수도 와세다대학 경제과를 졸업하고 독일에 유학 온 학생이 었다. 김법린이 이 책자의 영어번역을 했을 가능성 주장 60) 은 재고의 여지 가 있다. 왜냐하면, 재독한인대회에서 독일어․영어․중국어로 배포했던 전 단지 한국에서 일본의 폭정(Japanische Blutherrschaft in Korea) (1923)처 럼, 유덕고려학우회 내에서 충분히 英譯이 가능한 회원들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김법린이 대회를 위해 준비해 간 원고가 별도로 존재한다. 베를린 노이어 도이처 출판사(Neuer Deutscher Verlag)에서는 피압박민족 대회 의사록을 모두 독일어로 번역하여 에그몽 궁전의 봉화 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저작권자는 뮌첸베르크로 되어 있다. ‘에그몽 궁 전의 봉화’ 서명은 대회 첫날 에그몽 궁전에서 사회자 바르뷔스(Henri Barbusse) 가 봉화를 들어 개회를 알린데서 61) 유래한 것이다. 이 책에는 김법린의 연설문 전문, 한국 참가자 명단과 직책, 한국 대표단의 결의안이 수록돼 있다. 62) 그렇지만 한국의 문제 에 관한 언급이 없으며, 세부적으로 보더 60) 김광식(2000) p.306. 61) 조선일보 , 1927.3.22일자, 「(二)弱小民族大會實記」. 62) Liga gegen Imperialismus und für nationale Unabhängigkeit(1927) pp.148-158, p.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