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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참전유공자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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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영열사 행적록. 전무영(全武永)열사님은 도시조 전섭(全攝)의 51세손이며 정선진씨에서 분적(分籍)된 경 산전씨 25세손이다. 아버지 전민진(全玫珍)과 어머니 윤삼립(尹三立)의 1남3녀 중 외동아들 로서 1941년 9월 11일 경남 김해시 한림면 장방리 진말마을에서 태어났다. 한림초등학교와 진해중. 진해고교를 졸업하고 서울 중앙대학교 신문학과(現․신문방송학과)에 진학을 하셨다. 전무영 열사님이 중앙대학교 신문학과를 진학을 한 이유는 정론직필을 해야 될 언론이 자유 당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 독재를 미화하고 거짓뉴스로 국민을 속인 점을 개탄하면서 바로잡 고 싶어서였다. 전무영 열사님이 1960년 3월 2일 중앙대학교 신문학과에 입학했을 때 이승만 정권은 독재정치와 부정부패가 점점 도를 더해가던 시기였고 그 정점이라 할 수 있는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부정선거가 발생했다. 이승만 대통령 과 자유당 정권은 사사오입개헌이라는 전대미문의 부정한 방법으로 장기집권을 꿈꾸면서 부정선거를 스스럼없이 거행했다.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던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떠올 라 전 국민을 경악 시켰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전무영 열사님은 중앙대학교 학생대표로서 독재타도에 앞장섰다. 그리고 1960년 4월 19일 서울지역 대학생들과 합세하여 "이승만은 물러나라! 독재정권 타도하자!"를 외치며 이승만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경무대(現.청와대) 를 향해서 진격했다. 위기상황을 인식한 경무대 경찰서장(現.대통령 경호실장) 곽영주는 경찰에게 발포 명령을 내렸 고 맨손을 들고 항거하는 학생들을 향해서 뒤쫓아 가면서도 총을 난사했다. 원각사 앞에서 독재에 항거하던 전무영 열사님을 향해서 경찰들은 발포를 하였고 심장을 관통당하는 총상을 입어 그 자리에서 절명하셨다. 4.19혁명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학생들이 일구어낸 혁명으로 기록되었음은 물론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었다. 4.19혁명 민주이념은 대한민국 헌법전문에도 명시되어 있기도 하다. 민주주의를 위해 고귀한 피를 흘리신 전무영 열사님의 숭고한 정신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함께 자자손손 이어질 것이다. 한편으로 열사님의 정신을 기리는 추모비는 서울 수유리 국립4.19민주묘지.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의혈탑(義血塔).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의혈탑(義血塔). 진해고교 교정, 그리고 이곳 열사님 묘역에 세워져 있으며 진말 전씨 종친회 에서는 1961년부터 해마다 열사님을 추모하는 제사를 4월19일에 모시고 있다. 글쓴이 / 전원일(시인) 설치자/진말 전씨 종친회 설치일자 / 2023년 4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