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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9) 반면에 만당(映居) 때의 돈황 17굴 벽화인 수하여인도나 도독부인 태원왕씨 예 불도 등의 예들에서 보면 적어도 중국 당대에는 결혼하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이 머리 모양을 했음이 확실시된다(圖20,21) 이렇게 본다면 박익 묘의 동벽과 서벽에 그려진 여자들, 특히 소녀 쌍환계를 한 여자들은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믿어진다 실제로 고려후기 불교회화에 등장하는 여인들 중에서 나이가 들었다고 판단 되는 여자들은 이 머리모양을 하지 않고 있다. 나이 어린 일부 소녀들만이 수련계를 하고 있어서 고대의 전통이 계승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19) 이렇게 본다면 이 고 분의 동벽과 서벽에 그려져 있는 여자들은 미혼의 시녀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 다. 남자들은 깃이 둥글고 아래 좌우가 트여 있는 단령의 포c*힘)를 입고 허리에 띠를 매 었으며 긴 가죽장화인 화C~lt)를 신고 있다. 머리에는 춤이 높고 테가 있는 벙거지를 쓰 고 있는 모습이 서벽 3군의 그림에서 확인되는데 그 옆에 있는 인물(서3군의 인물들 중에서 맨 앞에 있는 남자)은 뿔이 위로 향한 사모(센에릅)와 복두(11맺頭)를 쓰고 있는 것 이 아닌가 추측되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圖15). 어쨌든 남자들은 관리의 모습을 연상시 키지만 불확실하다 남녀의 인물들은 모두 5둥신의 비례를 보여주고 있으며 어떠한 과장도 엿보이지 않 는다. 철선묘(鐵線橫)를 구사하여 백묘법(白拖法)으로 인물을 표현하였고 푸른색이나 붉은색 등의 담채(淡彩)를 곁들였다. 이러한 기법은 개풍군의 수락암동 고분이나 공민 왕릉 12지신상의 묘법에서도 확인되어 고려시대의 인물묘사법을 따랐음을 말해준다(圖 9- 11)20). 고려 후기의 불교회화에서 볼 수 있는 짙은 원색의 화려한 농채법(禮彩法)과 는 전혀 거리가 멀다. 인물들의 눈을 크고 들뜬 모습으로 표현한 것은 가이하게도 앞 에서도 언급한 408년의 고구려 덕흥리벽화고분의 인물들을 연상시켜 주애 대단히 흥미 롭다(圖16,17). 이 고분의 동벽과 서벽의 인물들을 위시한 벽화는 솜씨가 같은 것으로 보아 동일의 화가가 그린 것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그림에 세련성이 부족한 것을 보면 중앙의 화단 19) 상게의 에 이외에도 5¥{띠 • 李디筆의 「觀經變相圖J (1323)의 세부 부분도에도 수련계를 한 어린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상게서 圖3의 세부 부분도 참조. 20) 수락암동고분의 벽화는 金元龍, 「탤畵J , 圖110-115; 공민왕릉의 벽화는 『북한의 문화재와 문화 유적J N, 圖147-154 참조. 1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