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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순 (당시28세) 1960년 3월 2일 출생 1985년 전남대학교 재학 시 계림교회 대학부 회장으로서 민중가요집‘메아리 1집’을 발행 1985년 12월 1일 계림교회 제14회‘계명인의 밤’에서 정권비판 풍자극‘금관의 예수’출연 1986년 11월30일 제15회‘계명인의 밤’에서‘해방과 통일의 성서적 조명’발표 ‘반외세 반독재 투쟁을 통하여 민중해방과 통일에 이바지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사명이다’는 요지의 발언함 1987년 4∙13호헌조치에 반대하여 삭발, 단식 농성 1987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한국사회연구회’조직 활동 1988년 5월~6월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원우회장 6∙10남북학생회담에 관한 비상총회 및 관련 집회 참여 1988년 6월 23일 10:00경 한신대학교 기숙사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채 발견 |37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당시 광주 전남지역의 민주화와 인권운동의 상징적 역할을 하였던 계 림교회에서 대학부 회장으로 재직 시 이 교회 대학부 1, 2학년들의 사회 과학 세 미나를 이끌었고, ’85년‘계명인의 밤 행사에서 사회 비판극인‘금관의 예수’에 서 예수 역을 맡아 민주화운동에 문화적으로 기여하였다. ’86년‘계명인의 밤’행사에서는‘반외세 반독재 투쟁을 통하여 민중해방과 통 일에 이바지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사명이다’는 요지의 주제 발표를 하였다. 건국대학교 영자신문에 4∙13 호헌조치에 반대하는 글을 기고하였으며, 4∙ 13호헌조치에 항의하여 삭발 단식 투쟁을 하였고, 6월항쟁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집회 시위에 참여하였고, ’88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원우회장 자격으로 6∙ 10남북학생회담에 공식적 차원에서 참여하였다. ’88년 6월 20일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동료들과 막걸리를 마신 후“가슴이 답 답하다, 자고 싶다, 들어가 쉬어야 하겠다”라고 말을 한 후 자신의 기숙사 방으로 들어가 그로부터 3일 후 기숙사 방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채 발견되었다. 동지 가 숨진 채 발견된 기숙사 방문 및 창문의 잠금장치가 안으로 잠겨 있고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없는 등 아직도 의문의 죽음으로 남아있다. 끝내살리라 |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