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page
들은 동2군의 예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듯이 각 군마다 두명이 앞쪽 같은 선상에 배 치되고 다른 한명이 그들 뒤쪽에 배치되어 완전한 삼각형을 이루게 하고 다른 한명을 앞쪽 두명의 인물들보다 약간 뒤쪽에 덧대듯이 더하여 4인 1조를 이루게 한 반면에(圖 13), 다카마쓰쓰차의 여인 군상들에서는 네 번째의 인물을 옆쪽이 아닌 밴 뒤쪽에 배 치하고 있는 점이라 하겠다 어쨌든 인물들의 포치나 구도에 있어서도 탕초무늬의 경 우처럼 고구려 고분벽화의 전통이 감지된다. 오직 등장인물들이나 복장과 기물만 고구 려가 아닌 고려시대 후기 또는 조선초기라는 것이 큰 차이일 뿐이다. 동1군의 그림에서는 앞쪽의 여인 2명과 뒤쪽의 남자 1명이 삼각을 이루게 하고 여인 1명을 덧붙였고 동2군에서는 여자 세명이 삼각을 형성하게 하고 남자 1명을 덧대서 나 름대로의 변화를 추구하였음이 엿보인다(圖13). 이러한 구성상의 기본원칙은 서벽의 벽 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일관되게 엿보인다. 서4군의 인물들은 이를 잘 말해준다{圖15). 다만 서4군에서는 앞쪽의 남자 2명과 뒤쪽의 여자 1명이 삼각을 이루고 작은 여자 1명 을 덧붙이고 있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라 할 수 있다 남녀의 구성을 보면 동1군과 동2군 모두 여자 3명에 남자 1명으로 짜여져 있어 단연 여성 위주임을 알 수 있으나 서3군의 경우에는 남녀가 각각 2명씩으로 되어 있어 차이 를 드러낸다. 동3군과 서 1군 맞 2군의 경우에는 박락이 심하여 남녀 구성이 어떻게 되 어 있었는지 알 길이 없으나 동벽과 서벽의 벽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무래도 여성 이 숫적인 면에서 우위를 점했던 것으로 믿어진다. 이는 동벽과 서벽의 벽화내용이 묘 주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서이기 보다는 묘주를 위한 서비스에 보다 지중된 것임을 확인시켜 준다. 여인들은 춤이 긴 저고리과 치마를 입고 있는데 저고리는 오른쪽으로 깊게 여며져서 왼쪽 깃이 오른쪽 깃을 현저하게 엇빚기고 있다. 그러나 옷고름은 보이지 않는다{圖 13,15) 흰 저고리에 붉은 치마나 반대로 붉은 치마에 흰저고리를 입어서 상하의의 색 조를 달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고리와 치마를 모두 흰색으로 통일하여 입은 경우도 있어 약간의 다양성을 엿보게 한다. 저고리 밑으로는 예외없이 두 개의 끈들이 치마 위로 늘어져 있는데 대체로 치마의 색깔과 일치하여 치마를 동여맨 끈이 늘어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오직 동2군의 첫 번째 여인(붉은 판을 들고 있는 인물)의 경우에만 흰 치마와 달리 붉은 끈이 늘어져 있다(圖13) 흰 저고리와 치마를 입었지만 치마끈만 - 1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