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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수(당시20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8년 전북 정주시 출생 1987년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법학과 입학 ‘서도회’써클 가입, 활동 ‘호남향우회’회장 역임 ‘동학운동사 연구회’가입, 활동 1988년 1학기 가정형편으로 휴학 1988년 5월 17일 교내 광주영령 추모식에서 광주항쟁 성명서 낭독 1988년 5월 18일 시계 탑 앞에서 11시경 분신 1988년 5월 26일 한강 성심병원에서 분신 9일 만에 운명 |37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전북에서 태어나 6월 항쟁의 거센 물결이 몰아치던 ’87년 대학에 입학한 동지 는‘동학운동사 연구회’등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학생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동지는 6월 항쟁 이후 전두환이 물러나고 광주학살의 진상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그 책임자인 전두환에 대한 구속수사와 광주항쟁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 에 앞장서며분신 전날에도교내 집회에서광주항쟁 성명서를 낭독하였다. ’88년 5월 18일 오전 11시경, 동지는“광주항쟁 진상규명”“국조권 발동”을 외 치며 시계탑 앞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야 말았다. 병원에 입원한 후 극심 한 고통 속에서도“광주는 아직도 살아있다”“나는 괜찮으니 돌아가서 투쟁하라” 고 동료에게 당부하던 동지는 분신 9일 만에 광주영령들에게로 돌아갔다. 동지의 분신 동기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가 가장 컸다. ’87년 민중의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선거(12월)와 국회의원 선거(’88년 4월)를 거치면서 정국은 여소야대로 치달으며 각 당의 당리당략만을 생각하게 되었다. ‘광주항쟁의 진상규명’‘삼청교육대’‘언론탄압’‘5공화국의 부정비리(6공도 포 함)’‘전두환∙이순자의 부정비리 소환조사 구속’등의 진상규명은 허공에 떠 버 린 뜬 구름이었다. 이러한 기회주의와 당리당략적인 모습을 보며 동지는 분신을 결심하게 되었고 이 땅의 민주화와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되고자 하였다. ‘빛고을이라 일컬어지던 광주가 하루 아침에 핏고을로 변해버렸으며 우리의 영원한 우방이 라고만가르친미제국주의는만행을묵인, 방조의단계를넘어동조를한것이다. … 이제80년이후살아있다는이유만으로도먼저가신이들에게크나큰빚을진우리는뜨거운 마음으로반동세력과의계속적인투쟁을전개해나가야할것이다. 광주항쟁비리주범노태우를처단하자! 오월항쟁계승하여군부독재타도하자! 광주민중항쟁진상규명을위한국정조사권을발동하라! - 1988.5.18. 광주항쟁추모식에서동지가낭독한성명서중에서- 끝내살리라 |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