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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한의 땅 삼천리강토에 3.1독립만세의 함성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갈 때 가난한 아동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는 민족학교 계동학원이 설립되니 때는 1923년 4월 이었다. 당시 서울 협성학교에 다니던 박창호(25세)가 항일학생운동을 하다가 이곳 고향에 돌아와 세전종토에 교사를 짓고 학생을 모집하니 인근의 아이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경술국치 후 일제 치하에서 이 나라 독립지사들은 교육을 통한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곳곳에 민족학교를 세웠다. 이 무렵 예천에서도 여러 곳에 학교가 세워졌으나 세월에 묻혀서 흔적조차 없어졌다. 그러나 계동학원은 일제 때 신문에 여러 번 보도되어 아련한 옛 모습을 알아보게 되었다. 이 학원은 보통학교가 없던 개포면에 들어선 최초의 신식 학교였는데 재학생 수는 한 때 80여명이나 되었다. 이들은 무산가정의 학생들로서 월사금은 고사하고 학용품도 살 수 없었다. 그래서 학교경비를 선생들이 스스로 부담하는 등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수업은 설립자이자 학감인 박창호(1899~?) 선생을 비롯하여 함양박씨 일족 네분이 무보수로 헌신하였다. 박 학감은 지밀직부사공파 주손으로 일찍이 서울 중동학교와 협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박노헌(1895~1927) 박중식(1897~1878) 선생은 고장에서 함문을 수학하고 학교 설립 때부터 적극 함여하였으며 박유상(1902~1983) 선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