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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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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경 이원영목사 생가. 안동시 문화유산 제49호 사은구장 이 집은 퇴계 이황의 14대손인 이원영목사(1886-1958)가 태어나 성장한 곳이다. 아버지 이관호와 어머니 김영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혁신 유림으로 5세부터 한문을 사숙하였고, 봉성측량강습소(1909), 보문의숙(1912)을 졸업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예안면 3.1운동을 주도하여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복역중 이상동 장로의 전도로 기독교 신앙에 입신하였다. 출옥후 안동 인노절 성경학교(1925)와 평양 장로회신학교(1930) 제25회를 졸업한 후 영주,이산,안기,신세,안동서부교회등 안동지역 교회를 담임하였다. 일제의 항국신민화정책에 대해 이원영은 1938년부터 해방이 되기까지 거부함으로써 4차례에 걸쳐 옥고를 치루었다. 1945년 광복과 함꼐 출옥한 그는 1946년 '경안고등성경학교(현 경안신학대학 대학원)'를 설립하여 교역자 양성에 힘을 쏟았다. 또한 경안노회 노회장에 다섯 차례 피선되었고, 경안고등학교, 계명대학교 설립 법인이사를 역임하였다. 1954년에는 제39회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으로 추대되어 신사참배 취소성명을 발표하였으며, 1957년 경안노회 공로목사및 1958년 안동서부교회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정부에서는 예안면 3.1운동의 공로로 1980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으며, 1999년 11월 2일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제2묘역에 이장되었다. 이원영목사의 생애는 애국지사요, 참된 교육자요, 사랑의 목회자요, 산 순교자로서 고난을 영광으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자취를 남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