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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 가학을 닦아서 세업을 이었더니 약년 25세에 미국 선교사 어두만 목사의 설교에 감화되어 엄한 유교 가문에서 개화로 전형하여 신앙의 길로 나아갔다. 봉양교회의 전도사를 거쳐 비봉리에서 개신학교를 세우는 등으로 복음전도와 지역 발전에 이바지하다가 평양신학교를 나와 동산병원에 시무한 뒤 김천교회 목사로 옮긴 얼마만에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김천지역을 주도하고 잡혀서 3년 징역 언도로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 여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하자 더욱 일정을 비판하며 직언을 서슴치 않더니 1942년 신사참배 거부로 재수감되어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고초를 겪었다. 광복 후 비로소 목자의 외길로 돌아가서 영남 각처에 교회를 설립하고 대구 제1교회 목사를 거쳐 경북노회장을 역임하고 1965년 12월 14일 향수 83세로 영면하셨다. 초배는 안동김씨로 수극의 녀요. 계배 김순애 전도사는 김해인으로 석환의 녀이다. 자는 병철이요. 손은 인환 명환 능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