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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후 다시 찾은 청원군 이곳은 충북 청원군 옥산면 덕촌리. 한말 국권회복운동과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정순만 선생이 태어나신 마을이다. 정순만(鄭淳萬, 1876~1911)은 덕촌리에서 아버지 정석종과 어머니 밀양 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896년 3월 이승만·윤치호 등과 함께 독립협회의 창립에 참여하였고, 1898년 11월 만민공동회 도총무부장으로 활약하다가 이승만·유근·나철·안창호·남궁억·양기탁 등 367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1902년경 고향에서 덕신학교를 설립하여 구국교육에 힘썼으며, 만주로 망명하여 간도 용정에서 이상설·이동녕·여준 등과 함께 서전서숙을 설립하여 민족교육과 독립사상을 주입시키고 독립군 양성에 주력하였다. 1907년 안창호·김구·이동녕·양기탁·이회영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고, 헤이그특사의 여비 18,000원을 한인회장 김학만과 함께 교포로부터 모금, 전달하였다. 1910년 국권상실을 전후하여 노령에서 활약하였으며, 1910년 연해주지역에서『해조신문 海潮新聞』·『대동공보 大東共報』등을 발간하는 동시에 13도의군부(十三道義軍府), 성명회, 권업회, 관일약(貫一約) 등을 설치하여 민족계몽 및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1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연해주 지역에 한인 사회의 갈등으로 일어난 양성춘(楊成春) 사건에 연류되어 양성춘의 가족들에게 보복 살해당했다. 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