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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로 알아보는 독립운동 소개 01]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 양기탁
양기탁(1871~1938)
안장 위치 :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묘역 7번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만민공동회 간부로 활약하였다. 1904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총무 겸 주필을 맡았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를 비판하는 사설을 쓰고, 장지연의 논설 '시일야 방성대곡'를 영어로 번역하여 〈코리아 데일리 뉴스〉에 실어 전 세계에 알렸다. 이에 일제는 양기탁이 국채보상운동 의연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구속하였으나 결국 무죄로 풀렸다.
1907년 안창호.이회영 등과 신민회를 조직하고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신민회 전국 간부회의에서 독립 전쟁 전략을 채택하고 만주의 무관학교와 독립군 기지를 창건하기로 결정하였다. 1910년 8월 자신이 직접 만주를 답사하였고, 그해 12월 이동녕과 이회영을 보내 신흥무고나학교와 독립군 기지를 세우는 데 성공하였다.
일제가 신민회를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1933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에 취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가 1938년 병으로 서거하였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으며, 묘소는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묘역에 있다.
대한매일신보에 실은 국채보상운동 의연금 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