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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동산병원을 개업하여 의료업에 종사하다가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대구에서 시위에 참가하고 일경의 지명수배를 피하여 상해로 망명하였다.
1919년 4월에 임시정부에서 국내외를 연결시키며 통제하기 위하여 설립한 교통부의 교통위원으로 피선되었다.
국내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체포 위기를 여러 번 모면한 뒤 만주, 봉천으로 가서 국내 출입 안내역과 연락책으로 활동하였으며, 또한 12월에는 노령 니코리스크시에 배영학교(培英學校)와 병원을 설립하고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독립계몽사상을 교육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