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page

곽현정(당시22세) 1966년 10월 24일 전남 목포 출생 1982년 수유여중 졸업 1985년 2월 11일 풍문여자고등학교 졸업 1985년 한신대학교 신학과 입학 1986년 11월30일 건국대‘애학투련 항쟁’참여 1988년 4월 10일 성지교회 2층 자택에서 운명 |36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86년 건대항쟁에 참여하여 구속된 후, 115일만에 출소(징역1년 6월, 집 행유예 2년)하였다. 건대항쟁 진압과정은 마치 전쟁과도 같았으며 경찰은 학생 들을 구속하는 중에도 구둣발과 몽둥이로 짐승처럼 폭행하고 폭언을 일삼았다. 동지는 저들의 악랄한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87년 봄학기와 가을학기를 간신히 마치고 휴학하였다. 건대 항쟁 이전과 이후에도 수차례 경찰에 연행되어 구류를 사는 등 투쟁의 선 봉에 서있던 곽현정 동지는 결국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통 받다 자결했다. 다음은 동지의 유고글 중 일부이다. ‘그날의울분을되씹으며 “넓은 교정, 그헤아릴수없는숫자의많은사람들, 많은함성소리, 그것은차라리완전히 공개된자유의마당이요, 해방의거리였다.” “그런데설마가사람잡는다고, 끊이지않는인해전술과최루탄공세는눈뜨고지켜볼수없 는지옥의도살장과같았다. 문하나만깨지면건물안의수십, 수백의사람들이개같이끌려가 야할판이었다. 모두들이성을잃었다. 그누구도침착할수없었던것이다. 손에잡히는것은 모조리 좋은 무기였다. 심지어는 화장실의 세면대와 변기까지 깨서 사용하였다. 나중에는 그 것도모자라서숨이턱턱막혔다.”… 오후5시, 드디어출소식이다. “소내계신애국시민여러분! 그리고민주학우여러분안녕히 계십시오. 한신대 2학년, 만 일백 열닷새만에 출소합니다. 이거 놔요, 인사도 못해요? 진정한 조국의해방과이땅남과북이하나되어어우러지는그날까지끝까지투쟁하겠습니다.” - 동지가88년「한신」가을호투고글중에서- 끝내살리라 |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