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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영희 교장 동상 건립문
여기는 인천중학교 그리고 제물포고교. 일찍이 길영희교장선생(재임 1945~1961)이 보석같은 교사들과 정성스런 인천시민의 온 힘을 모아 인천을 비롯한 전국의 영재를 가려 소금과 등대의 정신으로 나라의 선비(국사)를 기르고자 노고했던 웃터골 기억하라. 이 장소의 순결을 이 장소의 열정을 그리고 이장소의 영혼을! 선생은 1945년 11월 21일 인천중학교 초재교장으로 부임하셨다. 일찍이 3.1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르고 교육구국의 일념으로 교단에 몸담았다가 도산의 유지를 받들어 1939년 인천에 내려와 동지들과 함께 후생농장을 경영하며 해방을 준비하던 선생은 인중졸업생 재학생 학부형대표들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여 교장으로서 민족교육의 경륜을 마음껏 펼치셨으니 마침내 인중의 경험을 바탕으로 1954년 제고를 창립 교장을 겸입하면서 명실공히 인중 제고를 전국적 명문학교로 거듭나게 하셨다. 그 비밀은 무엇인가? 우선 부정입학을 없애 오직 실력만을 학생선발의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입시를 둘러싼 부정부패를 척결하였다. 또한 자율을 생명으로 모든 학생이 예술과 체육활동에 동참케 하여 전인격적 완성을 도모하게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고등학교에서는 동아리의 연합으로 반들 구성 담임까지 초빙하는 한편 격세로 선후배 결연의 동아리를 묶는 획기적 방안으로 자치의 고매한 이상을 고취하였다. 춘추필법을 연마했던 교지 '춘추' 학생들이 반별로 운영하는 강당조회 학교의 두뇌였던 개가식 도서관 그리고 무감독 시험은 교육자치의 최고의 실험이였던 것이다.
교육개혁이 한국 사회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른 작금의 현실을 음미하면서 교육자치의 위대한 실험실이었던 이 장소에 통일시대를 온전히 맞이하기 위한 인천교육의 부흥을 염원하는 인천시민과 함께 이 동상을 정중히 봉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