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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門中의 입향조 서의손은 달성서씨 원조이신 고려 봉익대부 판도판서 달성군 서진의 8세손이시다. 이조 중종조에 무과에 급제하여 한성참군하시고 곡성현감을 지냈으며 임기를 마치고 이곳 좌삼으로 은거한것이 지연이 되어 사후 이곳 취서 남산 외석리 산39-2에 봉장하므로서 후손들이 좌삼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곳에 정착한 시기가 1530년대라 이후 450여년간 달성서씨 집성촌으로 조선조 三班(삼반)인 名閥(명벌)의 禾主(화주) 영조계하 18대 공신가문의 후예들이 살았으므로 지방관아로 부터는 향반의 대우을 받으면서 번창하였으나 이조말엽 개화기에 서광범 서재필등이 갑신정변의 주모자로 화를 당함에 이곳 좌삼집성촌에도 공조부역이 가혹하여 많은 일족들이 고향을 등지는 불행을 겪었고 일정때는 20세손 서병희의병장 항일운동사건으로 왜경의 핍박이 절정에 달하여 일족들이 타처로 흩어지는 멸문의 궁지에 몰리기도하였다. 지금은 20여 가구 일족이 거주하며 서씨 집성촌의 명백을 유지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는 현재 약600여 새대 3000여명의 입향조 의손의 후손들이 생업과 사회활동에 열중하고 있다. 인간의 생사는 자연의 이치이니 우리문중의 흥망성쇄와 生과 滅도 우주의 섭리에 따를것이다. 본 종문의 사후 안녕과 편익을 도모하고 국토이용의 효율성과 장묘문화의 시대적 변천에 맞춰 여기 양산시 상북면 신전리 산15의1번지에 종문의 뜻을 모아 추모공원으로 단장함이며 위로는 선조님의 영령을 모시고 아래 이곳에는 후손들의 영령을 한데모아 함께 아울러 추모함으로서 자손만대 길이 길이 좌삼서씨의 기상과 얼과 전통의 맥을 영구히 빛내어 이어가고자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