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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주소가 잘못되었는지 모른다는 가정하에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 9-1 도 찾아봤다. 이 곳에서 30년 이상 사신 분이 그런 것을 본적이 없다고 한다. 남양주시에 전화해보니, 한참 확인 후에 온 답이, 어르신들께 여쭈어보니, 화도읍 월산리 490 월산교회로 이전한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가서 보니 월산교회는 월산리가 아니고 답내리에 있었고, 답내리 490(답내리 555) 월산교회내에 있는 것은 화도3.1운동기념비였다. 아래 사진은 독립기념관 사이트의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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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도독립기념비(和道獨立紀念碑) 3·1운동시 남양주시 화도읍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기념하여 세운비이다. 1919년 3월 16일 화도면에서는 이달용·이승보·이재하·이태하·이덕재·이인하·김우동·이택주·류인명·홍순실·윤대익 제위가 봉기할 것을 결정하고 연락하던 중 왜적에게 발각되었다. 이에 거사는 좌절되고 3월 18일 아침 이재하·이승보·이택하는 피검되었다. 그날 밤 답내리 월산리의 주민이 총궐기하여 마석우리 병참앞에 쇄도한 후 피검인사의 석방을 요구하며 독리만세를 외쳤다. 이때 그 함성은 천지를 진동하였고 앞장서 나가던 이달용·손복산·신영희·유상규·이교직 다섯 분은 왜적의 무자비한 총검에 순국하였다. 그리고 이재혁·윤균·강덕여·윤정석·원대현 등 5명은 중상을 입었다. 3월 19일 일경이 또 다시 김필규·이승연·강선원·윤성준·남궁우용·김원석·권은·이윤원을 연행하여 모두 수개월씩의 옥고를 치렀고 이복현·강순필 외 수십 분도 무수한 곤욕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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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강토를 주셨으나 우리는 한동안 왜적의 더러운 발에 짓밟혔다. 1910년 국권을 왜적에게 빼앗겨 기회 오기를 기다리던 중 고종의 승하하심을 계기로 기미년(己未年) 3·1운동이 일어났으니 불타는 애국 충정 앞에 총칼이나 죽음이 두려웠으랴. 성난 파도처럼 퍼지는 대한독립만세 소리는 서울에서 시골에서 메아리쳐 삼천리 방방곡곡이 만세의 함성으로 진동하였다. 3월 16일 화도면에서도 이달용, 이승보, 이재하, 이택하, 이덕재, 이인하, 김우동, 이택주, 류인명, 홍순철, 윤태익 제위가 봉기할 것을 결정하고 연락하던 중 왜적에게 발각, 거사는 좌절되고, 3월 18일 아침 이재하, 이승보, 이택하는 피검되었다. 그 날 밤 답내리, 월산리 주민이 총궐기하여 마석우리 병창 앞에 쇄도한 후 피검인사 석방을 요구하며 독립만세를 외치니 그 함성은 천지를 진동하였고, 앞장서 나가던 이달용, 손복산, 신영희, 유상규, 이교식 다섯 분은 왜적의 무자비한 총검에 순국하시고 이재혁, 윤균, 강덕여, 윤정석, 원대현 다섯 분도 중상을 당하셨다. 3월 19일 미명의 적들은 또 다시 김필규, 이승면, 강선원, 윤성준, 남궁우용, 김원석, 권은, 이윤원을 연행하니 모두 수개월씩의 옥고를 치르셨고, 이복현, 강순필 외 수십 분도 무수한 곤욕을 당하였다. 적이 물러간 지 40년 우리는 이 분들의 귀한 피와 목숨에 삼가 머리를 숙이고 그 영전에 깊은 위로와 감사를 드리며 그 위대하신 애국 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군민의 뜻을 모아 이곳에 추념비를 세우다. 서기 1985년 8월 15일 남양주군수 이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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