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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환 선생 묘소의 안내판, 위치 확인은 불가능했다. 백일환 선생은 경기도 김포(金浦) 사람으로, 1919년 3월 22일 김포군 월곶면 군하리(月串面 郡下里) 장날을 이용하여 박용희(朴容羲)·이병철(李炳喆)·성태영(成泰永)·이씨(李氏)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그 진행을 주도하였다. 그는 3월 22일 군하리 장터에 나아가 성태영과 함께 시장에 모인 군중들에게 독립만세를 부를테니 향교로 모이라고 연락하였다. 이 때 그는 박용희와 이병철의 도움을 받아 이씨가 수수깡을 사용하여 제작한 태극기를 선두에 세우고, 3백여 명의 시위군중을 인솔하여 월곶면 사무소로 행진하였다. 그곳에서 면서기 조원석(趙元錫)을 만나 독립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여 함께 독립만세를 외친 뒤, 성태영이 연단에 올라가 연설을 하려고 할 때, 군하 경찰 주재소에서 일본인 순사 산전중양(山田重洋)이 출동하여 성태영을 끌여내렸다. 이때 그는 뛰어 나오며 일경의 따귀를 때려 땅에 넘어뜨렸으며, 그의 총을 빼앗고 모자를 짓밟았다. 그리고 시위군중을 인솔하여 경찰 주재소로 가서 조선인 순사보 이성창(李聖昌)을 끌어내어 독립만세를 부르라고 강요하고 폭행하였다. 다시 면사무소로 가서 면서기 4명에게 태극기를 주어 독립만세를 외치게 하는 등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이해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