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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산 황단 황단은 1919년 이고장 유학자 수당 이덕응(1866~1949) 선생에 의하여 전국에서 유일하게 설단되었다. 선생은 선원계로 1900년 궁내부 판임관으로 황실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해온바 1910년 나라가 일본에 강제병합되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 주전 대불리에 화양도원을 열고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1919년 고종황제의 승하소식을 듣고 비분강개하며 북향사배 통곡한뒤 상복차림으로 화양산에 올라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제자들과 더불어 3년동안 망곡하며 날로 쇠퇴해가는 인심을 바로잡고 기울어가는 국운을 만회하고자 화양봉, 선암봉, 제천봉, 천황봉(전북), 파초봉, 두문봉, 유재봉(충남)등 7개소에 황단 설단을 상소하였다. 순종황제는 이를 윤허하고 고종황제 어진을 하사하며 삼극사(三極使)로 임명하였다. 삼극(三極)은 天極(천국, 옥황상제), 地極(지극, 공자), 人極(인극, 고종황제)등 3위에 대한 성인예에 따라 삼극 축송 홀기(笏記)등을 갖추어 매년 8월 그믐 정오에 북쪽을 향하여 제사를 올리며 자주독립을 염원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했다. 지금의 대불국교 전신인 화양도원옆에 삼극전을 세우려던중 일제 탄압으로 조정의 지시에 의하여 중단한채 터만 남이 그 뜻을 전하고 있다. 광무황제의 등극을 配川光聖(배천광성)원년으로 삼은 선생은 삼극사에 이어 1922년 13도 도강장(都講長)을 임명받아 전국을 순방하며 교육을 통한 晨儒敎(신유교) 부흥과 항일사상을 앙양하니 후학의 수효는 전라, 충청, 경상지방에 300여명으로 구국의 동량이 되었다. 삼극제는 일제의 감시와 6.25전란으로 맥을 잃을 수 밖에 없었지만 화양산 황단 만큼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선생의 자부인 김영기 여사와 후손 제자 황단보존회의 정성으로 선생의 우국충정(憂國衷情)과 도학의 정신으로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화양산 황단보존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