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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교회〉자리 이곳은 망선루(望仙樓)가 76년간(1923~1999) 옮겨와 있던 자리이다. 망선루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목조건물로 당초 이름은 취경루(聚景樓)였으며 지금의 북문로1가에 있던 청주객관 동쪽(옛 청주경찰서터)에 있던 2층 누각이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세조7년(1461년) 한명회(韓明澮)가 누각의 편액을 고쳐 망선루라 하였으며, 그 후 몇차례 중수(重修)를 거듭하여 왔다. 이 망선루는 그동안 수많은 시인묵객이 문장을 짓고 시국을 논하던 우리 고장 문화(文化)의 산실이었다. 1921년 일제(日帝)의 무덕전(武德殿) 신축으로 망선루가 헐리어 사라질 운명에 처하자, 독립운동가이며 청주 청년회회장이었던 김태희 장로를 중심으로 함태영 목사, 이명구 선생 등이 주축이 되어 망선루 보존운동을 전개하였다. 여기에 청주청년회, 청남학교, 그리고 시민들과 기독교인들이 적극 동참하여 1923년 이곳 청주읍 교회에 망선루를 이건(移建)할 수 있었다. 이는 청주지역 민간단체가 벌인 최초의 시민운동으로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하여 이루어 놓은 역사적 쾌거였다. 망선루는 일제때에는 청주지역 최초의 근대적 교육기관인 청남학교, 청신여학교, 상당유치원, 야학 등의 민족교육운동과 한글강습회, 각종 집회 및 강연회 등 사회운동의 장(場)으로 활용되었다. 해방 후에는 세광중.고등학교, 청신고등공민학교 등 육영의 장소가 되어 많은 인재를 배출해 내었으니 민족운동과 교육운동, 사회문화 운동의 요람으로 그 기능을 다하여 왔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망선루는 청주가 교육과 문화를 소중히 가꾸어 온 역사적인 도시임을 웅변해 주는 대표적인 건물이라 하겠다. 근자에 이르러 망선루가 노후하여 지탱하기가 어려워지자, 청주시민과 각 분야 단체들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민족정신을 일개우고 애향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하고자 망선루를 원래의 자리에 옛모습 그대로 복원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99년 10월 이 건물을 해체하여 청주시민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중앙공원으로 옮겨 세우게 되었다. 그간 일제의 민족정신말살 정책을 이기고 서 있었던 이 자리에는 그간 한결같이 망선루를 지켜온 청주제일교회에 감사하는 마음과 선학(先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청주시민의 뜻을 모아 이 비석을 세운다.
2000년 7월 1일 청주시.청주문화사랑모임 조각 : 송일상 / 문안 : 김민형.한국지명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