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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忠壇(사충단)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김해 사람들은 임진 왜란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나흘 동안 싸워 왜적의 북상을 막았다. 4월 14일 개전 당일 부산이 함락되고 다음 날인 15일 동래가 적에게 넘어가자, 김해성 사람들은 관군과 함께 지역 선비인 의병장 송빈(宋賓)(1542~1592), 김득기(金得器)(1549~1592), 이대형(李大亨)(1543~1592), 류식(柳湜)(1552-1592) 등 네 사람을 중심으로 뭉쳤다. 그들은 4월 17일 북상하던 왜군이 김해성을 세 겹으로 에워싸자, 야음을 통해 성 밖의 적을 기습해 첫 교전에서 적 수백 명을 죽이고 죽도까지 적을 몰아 추격하는 전과 를 올렸다. 이것은 임란 최초의 승전 기록이었다. 다음날인 18일 전날의 참패를 설욕하려는 왜군이 대규 모로 몰려오자, 관군은 중과부적으로 성을 나가 후퇴하였 고, 이에 굴하지 않았던 네 의병장과 김해성 사람들은 영 남의 곡창이며 요충지인 김해를 사수할 것을 맹세하였다. 이에 김해성 전투는 임란 최초의 의병 전투가 된다. 김해 의병들은 19일 종일 혈전을 계속하였고, 그날 밤 왜적은 김해 들의 보리를 베어 성 및 해자를 메우고, 성벽 을 타고 넘어왔다. 이튿날 20일까지 이어진 치열한 혈전 중에 성은 무너졌으나, 네 선비는 죽음을 두려워 않고 항전하다 모두 산화했다. 이로써 김해성 전투는 4일간 외적 의 진격을 저지하는 큰 성과로 기록된다.훗날 고종(8년,1871)은 사충단 四념을 건립해 그들의 충의 정신을 기렸다고 '조선 환이 승람'은 기록하고 있다.
거인 봉수 선생은 용감하고 충성스러운 네 선비의 높은 뜻을 되새겨 후인들이 국가의 위난에 당당하게 대처하길 바라는 뜻을 장문의 율시로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