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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승 효자비
비석은 운암면 선거리 선거, 동쪽 입구 길가 청웅 쪽 방향에 있다. 석비각의 규격은 48㎝, 135㎝, 21㎝이다. 명문은 효자경주김공교승실적비(孝子慶州金公敎升實蹟碑)이다. 비문은 1973년에 서흥(瑞興) 김규태(金奎泰)가 글을 지었다.
김교승의 본관은 경주이고 운암면 선거리 시목 동에서 독립투사 김영원(金榮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3·1운동 때에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동지들을 규합하여 벌통산에 봉화를 올리며 만세를 부르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기도 하였다. 1938년 천도교 105인 심고사건 때에는 임실군 천도교 지도위원으로 참여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김교승은 아내 박씨와 함께 부모에게 효성 또한 지극하여 일찍이 아버지가 3·1운동 지도자로 전주경찰서에서 모진 고문을 받아 거의 불구자가 되어 병보석으로 석방이 되었을 때에 아버지를 모셔와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간호를 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약을 살수가 없어 부인 박씨는 고운 자기의 머리를 잘라 팔아서 아버지를 간호하였는데 그 효성이 보람이 있었는지 아버지의 장독이 호전되어 일경에 다시 잡혀가 수감되어 옥중에서 얼마 가지 않아 돌아가시고 말았다.
출처 : 임실군지 ②문화유산과 역사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