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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동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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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와 개혁을 향한 움직임
개항 이후 고종은 일본·청·미국에 사절단을 파견하여 제도와 기술을 조사하며,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해 군제를 개편하고 신식 군대를 창설하였습니다. 김옥균(金玉均, 1851~1894)·박영효(朴泳孝, 1861~1939)·김윤식(金允植, 1835~1922) 등 개화파는 정부의 개혁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나 개화의 방향과 속도를 둘러싼 갈등은 커졌습니다. 1884년 김옥균·박영효 등 급진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은 청군의 개입으로 실패하였습니다. 이후 청의 내정 간섭이 강화되자 고종은 미국· 러시아 등과의 외교를 넓혀 이를 견제하려 하였습니다.
한편 최제우(崔濟愚, 1824~1864)가 창시한 동학은 세도정치와 삼정의 문란, 개항 이후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농민층으로 확산되어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청과 일본의 군대가 조선에 들어왔고, 이는 청일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조선 정부는 혼란을 수습하고 국가 체제를 근대적으로 개편하기 위해 갑오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간섭이 심화되고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이 이어지면서 개혁은 중단되었습니다. 그 과제는 이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의 근대 국가 건설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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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평화담판도(朝鮮平和談判圖)
임오군란 이후 조선과 일본이 체결한 제물포조약
1882년 임오군란 뒤 조선과 일본이 제물포조약을 체결하는 모습을 그린 일본의 다색 목판화이다. 화면에는 조선 국왕 고종과 조선 측 대표 이유원-김홍집, 일본 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 등이 등장한다. 실제 협상은 이유원과 김홍집, 하나부사를 대표로 진행 되었고 고종이 참석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은 이 조약에 따라 배상금 지급과 일본 공사관 경비병 주문을 받아들였다. 일본군과 일본 관리가 화면의 중심을 차지한 구성에서 당시 일본이 제물포조약을 바라본 사라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