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page


174page

제암리 대학살 한국 민족주의자들을 진압하던 중 일본 군대와 경찰이 저지른 한 만행에 대한 보고 대학살의 전말 4월 15일 화요일 이른 오후, 일본 군인들이 마을에 들어와 성인 남성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에게 전달할 말이 있으니 모두 교회에 모이라고 명령했다. 교회에 모인 23명 가량의 남자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걱정하면서 명령에 따라 바닥에 앉았다. 잠시 후 군인들이 교회를 둘러싸고 종이 창문 너머로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그때서야 청년들은 명령의 진의를 알게 되었다. 그들 대부분이 죽거나 다쳤는데도 악마 같은 군인들은 불에 잘 타는 초가지붕과 목조 건물에 불을 질렀다. 몇 사람이 뛰쳐나와 도망쳤지만 그들은 곧바로 총검에 찔리거나 총에 맞았다. 탈출 시도가 수포로 돌아간 6명 사체가 교회 밖에서 발견되었다. 교회에 불려간 남편을 찾아 두 명의 부인이 군인들의 포위를 뚫고 교회로 가려 했지만 모두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19세의 젊은 부인은 총검에 찔려 죽었고 40대의 여성은 총에 맞았다. 두 사람 모두 기독교인이었다. 그 후 군인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떠났다. 이것이 제암리에서 벌어진 피의 대학살 사건의 간략한 기록이다. - 「제암리 대학살」 - 프랭크 W. 스코필드 박사(Dr. Frank W. Schofield)의 조사(1919년 4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