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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의병활동 군수지원
김상익(金相翊) 선생
1852년 10월 16일 소수면 수리 출생
1889년 고종 의금부 도사에 임명
1910년 충청 경상지역 한봉수 의병대장을 군수지원
1933년 1월 3일 별세
1945년 독립유공자인 아들 김성응 충북 초대내무부장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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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익 선생과 아드님 김성응 선생은 공훈록에서 찾을 수 없고, 안동김씨대종회 사이트에서 다음과 같은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1910년 경술 한일합방으로 망국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현직을 버리고 일가족을 이끌고 경상북도 상주군 화북면 용화리 늘티 장바위로 낙향하였다. 당시 이곳 일대가 항일의병 양성의 본거지로 총책을 맡은 한봉수 의병대장과 손잡고 슬하에 장남 世應, 차남 漢應, 3남 貞應, 4남 聲應, 5남 洛應 등 5형제와 함께 온 가족이 피복제조 세탁과 무기제작 수리 그리고 고향인 수리에 추수해 놓은 수백석의 양곡을 육마로 운반하여 군량으로 보급하고 밤에는 독립운동 낮에는 왜병에 약탈등 갖은 고초를 당하면서 수백석지기 재산을 소개하고 고향에 돌아와 호구지책에 급급하면서도 여생을 후회없이 마쳤다. 1945년 8월 15일 해방후 4남 聲應이 독립유공자의 유족이며 독립유공자라 하여 충청북도 초대 내무부장에 취임한 바 있었으며, 6.25동란때 이로 인하여 납치되어 피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