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趣旨文(취지문) 하동은 영산 지리산의 정기가 서려있고,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600리 물길이 충무공 얼이 서린 남해바다와 만나는 곳이며, 삶의 터전이 풍요롭고 출중한 인재도 이어지는 자랑스런 고장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노량대첩, 하동에서 태어난 정기룡 장군의 상주대첩과 구국의 위업을 기리는 경충사는 충열의 고장으로 후세의 교육현장이기도 하다. 동학군의 거점지역인 하동 고성산(高城山)을 중심으로 일대의 동학군들이 결집하여 1894년 11월 11일 일본군과 마지막 혈전을 펼치며 186인의 전사자를 내면서 항전하였다. 그 곳에 위령탑을 세우고 매년 그 날을 맞아 추모제를 지내며 원혼을 위로하고 있다. 지리산 일대는 일제강점기에도 의병활동이 왕성하여서 일제에 항쟁한 주요거점이 되었으며 의병 출신 서훈자가 많다. 그러나 지금은 서훈장을 받을 가족을 찾을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이 미어진다. 우리고장은 오늘날까지 50여분의 독립운동 서훈자가 있으시다. 앞으로도 현창사업을 추진하면서 서훈자로 추서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할 것이다. 기미년 3월 1일 정오, 터져 나온 함성 대한독립만세!! 3월 18일(음력 2월 17일)에는 朴致和(박치화) 선생과 함께한 12인의 서명으로 만들어진 하동의 독자적인 대한독립선언서가 있었다. 그 뜻은 그 날에 하동장터에서 소금가마니를 쌓아 연단을 만들고 운집한 군민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로 목 터지게 외쳤으며 그 함성은 이내 이웃장터와 인근지역으로 이어졌다. 뒤늦께 찾은 원본은 독립기념관에 보존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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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만국평화회의에 보내는 대한독립선언문인 파리장서에 서명한 137인의 유림대표로 참여한 정규영(鄭圭榮) 선생과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모금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전 재산을 다 받친 정재완(鄭在浣) 선생 부자의 애국정신은 후세에까지 귀감이 되고 있다. 1920년 하동청년회가 창립되었다. 1927년에는 청년회관이 건립되면서 청년운동과 민족정기를 일깨우는데 지역의 거점이 되었으나 일제의 강압에 의해서 공회당으로 사용되었다. 해방후에는 교육,문화시설로 활용되어오다 1971년 본래의 취지로 되찾게 되면서 오늘에 이른다. 당시에 건립되었던 전국의 청년회관은 멸실되었으나,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곳은 하동이 유일하며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독립운동의 혼이 서린 역사의 고장으로 선현들의 숭고한 애국 애족 정신을 기리며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하동독립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의하였다. 이곳은 운기가 서린 역사의 현장이 되어서 찬연한 빛과 향기를 품으며 하동과 함께 영원하게 될 것이다. 하동독립운동기념탑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의 사적과 애향정신을 선양 계승코저 하는 하동인의 뜻을 경내에 새겼다. 우리고장 하동을 애국과 애향의 고장으로 더욱 발현되도록 기리며 빛내자! 하동독립공원에 담긴 정신을 새기면서 역사의식 애향정신 국권회복 통일염원의 큰 가치를 선도하고 실현하자. 2013년 3월 1일 하동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하동항일청년회관보전회 회장 李洙鍾(이주종) 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