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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남 실 향 민 들 은 왜 속 초 로 모 여 들 었 을 까 ? 17 실향민들은 1951년부터 들어오기 시작해 1950년대와 1960 년대까지도 계속 속초로 모여들었다. 초창기 속초는 피난민들 이 자유롭게 들어와 정착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고향과 가 까워 올라오다 보니 속초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감상적인 이유 로만으로 속초 정착이 가능하던 때가 아니었다. 당시 동해안에 는 속초가 아니라 훨씬 남쪽인 주문진에 피난민수용소가 설치 되어 있었고, 양양의 38선 일대에 검문소가 설치되어 민간인 의 북상이 통제되었다. 그래서 검문소를 피해 험한 산을 돌아서 속초로 넘어온 피난민도 있다. 몰래 속초로 들어왔다가 검문에 걸려 38선 이남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 는 비교적 자유롭게 피난민들이 속초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속초리에 들어선 미군 군수사령부 당시 속초는 동부전선 일대 군부대를 지원하는 군수지원부 대가 많이 자리잡은 ‘군수지원 거점지역’이었다. 국사편찬위원 회 전자사료관에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한국전쟁 기밀 해제문서 중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속초에서 활동했던 미 군 군수부대의 활동 보고문서가 있다. 1951년 11월 군수사령 부 예하부대를 설립하는 안이 계획되어 다음 달인 12월에 인 가를 받고 속초리에 군수부대가 들어섰다. 미군 제2군수사령 부 예하부대로 속초리에 들어선 8206부대(POD 8206th AU, Sokcho-Ri Area Command)이다. 지금의 농협속초지부에 본 부건물을 둔 미군 8206부대는 일본에서 LST 선박으로 수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