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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당시43세) 공주 인근 선산에 안장 1952년 5월 24일 출생 1986년 1월 27일 과학기술원 입사 1993년 과기원 유전공학연구소 4대 노조위원장 1993년 12월 16일 출근 중 불의의 교통사고 25일 충남대병원에서 끝내 운명 27일 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장으로 장례 |3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52년 5월 24일 공주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마치고, ’86년 1월에 과학기 술원에 입사하였다. ’87년 7.8.9노동자 대투쟁 이후 전국적으로 민주노조 건설이 시작되었다. 과학기술분야에서도 민주노조건설, 과학발전이라는 명목아래 가해 지는 과학기술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탄압분쇄와 과학기술의 민주적 발전에 대한 요구가 분출되었다. 동지는 ’87년 12월 9일 과학기술원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때 과학자가 아닌 과학기술노동자의 의식과 노동자연대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주도적으로 참여 하였다. ’88년 4월 16일 유전학연구소지부노동조합을 건설하고, 2대 위원장을 맡아 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 건설에 매진하였다. 또한 업종별 연대단체인 업종회의대전충남 활동과 대전지역 연대활동에 누구 보다 앞장서 연대하였다. 과학기술노동운동의 새 지평을 열어가면서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하던 동지는 ’93년 과학기술원 기관분리로 유전공학연구소가 분리독 립되면서 노동조합도 자동 분리되어 과기원 유전공학연구소 4대 노조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동지는 ’93년 12월 16일 출근 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였다. 동지는 과학기술노동운동의 제1세대로서 과학기술노동운동의 못 다한 한과, 한국과학기술의 민주적 발전을 보지 못한 채 25일 운명하였다. 끝내살리라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