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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百潭寺) 백담사 : 전통사찰 제24호 / 소장문화재: 보물 제1182호 목조아미타불 좌상 부 복장유물 〈설악산 심원사 사적기 雪嶽山 尋源寺 寺蹟記〉와 한용운의 〈백담사 사적기 百潭寺 寺蹟記〉에 의하면 백담사는 서기 647년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에 자장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한계사로 창건하고 아미타삼존불을 조성·봉안 하였다. 한계사로 창건 후 1775년(영조51년)까지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영취사로 바뀌다가 1457년(세조 3년)과 1783년(정조 7년)에 최붕과 운담이 백담사라 개칭하여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백담사라는 사찰의 이름은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潭)이 100개가 있는 지점에 사찰을 세운 데에서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백담사는 내설악의 아주 깊은 오지에 자리잡고 있어서 옛날에는 사람들이 좀처럼 찾기 힘든 수행처였다. 수많은 운수납자(雲水袖子)가 불원천리하고 이곳을 찾아 백담사 계곡을 시원하게 흘러가는 맑은 물에 객진번뇌를 털어 내고 설악영봉의 푸른구름을 벗을 삼아 출격장부의 기상을 다듬던 선불장 이었다. 한용운이 편찬한 〈백담사 사적기〉에 의하면 부속암자로서 유지만 남아있는 곳으로 동암, 원명암, 백련암 등 8개 암자가 있었다.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사는 1905년 이곳 백담사에서 머리를 깎고 입산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어 〈조선불교유신론 朝鲜佛敎維新論〉 과 〈십현담주해 十玄談註解〉를 집필하고 〈님의침묵〉이라는 시를 발표하는 등 불교유신과 개혁을 추진하였으며, 일제의 민족침탈에 항거하여 민족독립운동을 구상하였던 독립운동의 유적지로서도 유명하다. 1988년 5월 28일 자로 전통사찰 제24호로 지정된 백담사는 보물 제1182호(1993. 11.1)로 지정된 '목조아미타불좌상 복장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1928년 백담사의 복구가 끝난 당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사보(寺寶)로 현장의 유물로 전해지는 미타불상(彌陀佛像) 3위(位)와 소종(小鐘) 1좌(坐)가 있고, 인조의 하사품인 칠층옥탑이 있었다. 보물로 지정된 목조아미타불은 영조 24년(1748)에 조성된 아미타목불좌상(阿彌陀木佛坐像)으로 18세기 전반기의 불상 가운데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외 복장유물로는 불상신조성회향발원문(佛像新造成回向發願文) 1매, 다라니서입회향발원문(陀羅尼書入回向 發願文) 1매, 황참의 다리 연화방거 한글발원문 1매, 자식점지 한글발원문 1매와 만자소화문황단삼회장저고리(卍字小花紋黃緞三回裝赤古里) 1점, 유리와 수정등의 파편 수 백점을 보자기에 싼 복장물 1괄이 보관되고 있어 당대의 복식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 되고 있다. 현재 백담사에는 법당, 법화실, 화엄실, 나한전, 관음전, 산신각 등 6개동의 기존 건물 외에 만해 한용운 선사의 문학사상과 불교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만해 기념관, 만해 교육관, 만해 연구관, 만해 수련원, 일주문, 금강문, 만복전, 만해 도서관, 요사채, 양로실, 만해당, 헌다실, 적선당 등 16개의 건물로 구성된 한국의 대표적인 고찰의 하나이다. 백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기초선원으로 지정되어 갓 득도한 승려들이 참선수행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