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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봉수(韓鳳洙, 1883~1972)
본관은 청주(淸州)로 내수읍 세교리 출신이다. 호는 청암(淸巖)이며 이명으로 봉수(奉洙), 봉서(鳳瑞), 봉용(奉龍 奉用) 등을 사용하였다. 1907년 의병으로 봉기한 이후 1910년 5월까지 충북, 경상, 강원 등지에서 평민으로 구성된 의병부대를 이끌고 여러 차례 신출귀몰한 유격전을 펼친 중부지방의 대표적인 후기 의병장이다. 일제에 피체되어 내란죄로 교수형을 선고 받았으나, 이른바 합방대사령(合邦大赦令)으로 출옥하였다. 이후 일제의 온갖 탄압과 감시를 받았으에도 불구하고 1919년 4월 1일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다시 1년간 옥고를 치렀다(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