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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 갈벌(葛伐) 여기 이곳 갈벌은 어느 때부터 사람이 살았는지는 확실치 않으며 왜 갈벌이라고 이름하였는지도 추측 뿐이다. 다만 조선조 정조왕(서기 1752~1790)때 만들어진 지도에 갈벌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역사가 기록된 문헌, 문경지에도 갈벌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므로 구전 혹은 조상들의 무덤과 이곳에 살아온 씨족들의 연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부터 약 200년전부터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고 생각되며 마을 이름은 그 옛날 고려 때 갈(葛)승상이라는 지체 높은 분이 살고 있는 넓은 벌이라 하여 갈벌이라고 불러오다가 그후 갈평이라 하였다 한다. 그 근거로는 지금은 평천리(벌래)에 있는 갈승상의 묘를 우리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풀을 깍아오고 있으며 또한 갈승상의 위패를 마을 동신당에 모셔놓고 정월 보름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옛 문경의 이름이 고사갈이(곳갈)성(삼국시대)이고, 이곳이 갈벌인 것으로 보아 갈승상이 고사갈이성 성주가 아닌가 생각이 되며 그 성주와 관계가 있는 곳이기도 아닐까 생각이 된다. 그 이유인즉 고려사에 고래태조 10년 월(서기927) 후백제의 견훤과 정쟁을 할 때 고사같이 성 성주 흥달이 그 아들을 시켜 고려 태조에게 보내서 항복을 청함으로 그 아들(준달 응달) 삼형제에게 벼슬을 주었다고 한 곳이 어류산성(지금 평천리 달목이 넘어 동화원)이고 갈승상의 묘가 달목이 앞산에 있는 것으로 보아 갈벌 갈승상과 고사같이 성이 관계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