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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프編 각 문중 비 문 모응 • 173 (우의정)을 지냈고, 이름이 孝貞(효정) , 호는 西華(서화)로 rr興(중흥)賢相(현상)이라 일컬 었다 그의 소생으로 이름이 萬最(만최)이며 司響院(사옹원) 꿇事(봉사)를 지냈으며, 이름 徵海 (징 해)는 原州收使(원주목사)를 이름 德、짧f)C덕인)은 銀山(금산)깜6守(군수)로 更햄(이조)參講 (참의 )에 H홉職(증직 )되었다. 자손이 없어서 從廷(종질) 永倍(영배)를 入養(입양)하였다. 黃州(황주)收使(목사)로 펄땐 (이조)參判(참판)이 증직되고, 配位(배위)는 迎日(영일)鄭民(정씨)로 학생 與良(여량)의 딸이 요, 관찰사 始成(시성)의 玄孫(현손)이다 貞夫人(정부인)이 증직된 迎日(영일) 鄭E(;C정씨)는 공의 어머니이다. 이름이 徵樹(징집)이라 하고, 목사를 지낸 분은 공의 생가의 증조요, 이 름 德鳳(덕봉) , 參奉(참봉)을 지내고 권正(사정)을 증직 받은 분은 생가의 조부이다 공이 영조 무인 9월 3일에 출생하였는데, 鄭夫人(정부인)이 태중 꿈속에 거북을 보았다고 해서,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어려서부터 어른다웠고, 아이들과 장난하고 놀지 아니하였다. 다섯 살에 글을 배우는데, 선생에게 물어보기 를, 하늘땅이 어디서부터 열렸으며, 어디에서 끝이 나느냐고 하니 선생 이 대답을 못하였다. 학과 외에 되樹(자수)로 배우니, 학문이 날로 진취하였다. 仁元(인원)王尼(왕후)의 近屬(근속)이라고, 왕이 불러서 반갑게 악수까지 하고, 長寧願(장 녕전) 參奉(침-봉)을 제수하고, 正宗(정종) 병신년에 義짧(의영)奉事(봉사), 宣|婆(선릉) ï훌長 (직장), 기해년에 義禁(의금)都事(도사)로 전직되었는데, 그해 겨울에 l俠使(목사)公(공)의 병환이 있었다. 경술년에 司響平市(사옹평시) 主鎬(주부) 가을에 廣文科試(광문과시)에 꺼土元(징원)을 하 니, 準例(준례)대로 通政大夫(통정 대부)로 昇格(승격)하고, 왕이 이름을 불러서 머리를 들라 고 하고, 이르기를 풍모가 훤칠하고 아름답다고 웃으시며, 했(첨) 中樞(중추)歷(력) 敎寧(돈 녕)都IEC도정), 戶團(호조)參議(참의)를 제수하시었다 임자년에 左(좌)副承탑(부승지)를 除授(제수)하고, 왕이 불러서 보고 이르기를, 左(좌)副 承冒(부승지)의 직책을 아느냐 하문하시기에, 고개를 들어 우러러보니, 내가 선조의 造ι、 (유지)를 혹시 72.然(범연)하게 하더라도 더욱 힘써서 관직의 책임을 다하도록 하라 당부하 시었다, 공이 물러난 뒤에 왕이 바라보고 兵햄(병조)參쩌(참지) )를짧(호가)의 직책인 光 I찢(광릉) 승지로 옮기고, 왕이 글을 쓰라고 하나, 공이 붓을 날려 거침이 없으니, 왕이 침­ 으로 민첩하고 녁넉하여, 오랜 정험이 있는 자와 같도다 하시었다. 이어서 大司誤(대사간), 兵團(병조)參知(참지) , 參議(참의), 安품(안익-)깜B守(군수)를 제수하 였다. 왕이 연석에서 말하기를, 이모의 처지로 보아, 文識(문식)이 실로 결합하여, 장치- 크게 기용하려고 했는데, 이에 이르렀도다 관직은 인력으로 수용하기 어려운데, 이제 부서를 가 려서 주는 것 이 로다 하시었다. 공이 감격하여 淸前(청렴)히-고 簡便(긴-편)한 정치를 하고 뚫事(송사)를 公平(공평)하게 다루니, 고을이 평안하였다 한 때 흉년이 들었을 때, 봉급을 쪼개서 도우니 굶는 자가 없었다 어려운 사람을 교육시키고 근면 노력하니 자금이 넉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