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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항일독립운동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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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광복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이 총력적으로 일제에 항거한 흔적은 우리가 영원히 새겨야 할 빛나는 역사적 흔적이다. 우리 하동의 항일독립투쟁은 멀리 1905년 을사늑약체결이후 나라의 운명이 일제의 그늘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1908년 청암출신 강봉근의사가 일제 헌병 3명을 사살,항일의지를 만방헤 떨친 이후 화개,악양,횡천,청암 등지에서 박매지,임봉구,이성로,손몽상,조기섭,김의홍,우수보,박홍지,양문칠,유명국,손기혁,김대수,권석도 등 의사들이 의병으로 싸웠고,1919년 3.1독립만세운동에 즈음한 하동의 만세시위는 박치화등이 기초한 독자적 독립선언서를 4월 3일 만세시위와 함께 하동시장통에 살포함으로써 하동인의 기개를 떨쳤고 정낙영,정희근,이범로,이범호,정재백,정중기,정성기,점섬기,정윤기,정경기,정재기,정낙영,강성욱,정재윤,이원태,추홍순,문공학,이재기,김석배,하일로,권상숙,최인우,정화영,김중수,권복대,이홍식,정남시,권대섭,김주석,정상근,양봉원,이정수,이정철,이강율,임만규,김지준,김기범,정재옥 등 많은 지사들이 관내 각지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 비폭력 항거로 일제경찰을 놀라게 했다. 염상섭,전석순,정정금,박문화,최백근 등은 초등학교 학생으로 시위에 다감했는가 하면 김덕우,손구석,최인영,김채환,성효경 등 학생은 신사참배 거부로 소년항일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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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측의 항일 독립의지를 만방에 떨친 파리장서사건에 금남 출신 정규영지사가 서명자로 참여 하동인의 의지를 보였고,감홍권,이원열지사등은 상해 임시정부 요원으로 활약하였으며 김기완,문영빈,정재완 등은 임시정부에 자금을 보내 독립운동을 도왔다. 강인구,백운룡,김재영 지사등은 광복군으로 또는 의열단으로 활동했고,이병도,이세기,이도윤등은 학생으로 부산의 대표적 항일 시위였던 이른바 노다이사건 주모자로 이름을 냈다. 1926년 하동군민등은 지역 항일독립운동 거점인 하동청년회관을 건립 군민 계몽운동을 통한 항일 독립정신 함양과 민족정기 고취에 힘썼다. 1927년 대표적 민족주의 독립단체로 결성된 신간회에 조동호,윤영박,조용선,하만석,강우석,정환복,유영준 등이 참여 하동인의 독립정신을 자랑하였고,일본을 비롯한 서울 등지에서 산발적으로 전개된 반일 학생운동에 김병기,조학제,조무준,조성래,조영래,조정래,조복애,조옥래,송봉우,송재홍 등이 가담,하동인의 항일의지를 만방에 떨쳤다. 조국이 광복되기깨지 경향 각지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투쟁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하동의 다양한 항일투쟁 흔적은 더욱 가다듬어 후세에 여원히 남겨 주어야 할 하동인의 자랑이요 긍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