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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강릉에 보내어 우왕을 시해하고, 藝文館大提學 柳狗를 江華에 보내어 창왕을 시해 하였다. 아울러 공양왕 2년 초까지 합 옮, 李種學, 曺敏{I짖, 李뿔仁, 權近, 河짧, 文達漢, 李졌 등 공양왕 옹립에 반대했던 인물들을 유배하거나 주살하고 있다. 박익은 이같은 정치상황이 전개되자 낙향을 결심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박익은 낙헝:을 결정한 후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시로서39) 끓고 있다. 恩極生難報 年深意不安 지극한 은혜라 살아서 갖기 어려운데, 늙어지니 마음이 더 욱 불안하구나. 當兵行似됐 臨事用如閔 전쟁에서는 칼날처럼 행동했고, 사무에 임해서는 차분하게 일하였지 公道由於直 私情沒底間 공도란 정직한 데서 나오는 것, 사사로운 정이 二l 사이에 있을 수 없지. A心朝幕變 義없효忘違 인심은 아침 저녁으로 변한다지만, 의로운 붐이야 어쩨 돌 아갈 길 잊으랴. 박익은 이 시에서 왜구토벌 때 용감히 싸웠던 기억과 맡은 업무를 꼼꼼히 챙겼던 자 신을 되돌아 보고, 공무에 정직하여 사사로움이 없었다는 것을 회상하고 있다. 그가 낙 향을 결심한 것은 인심이 아침 저녁으로 바뀌는 것, 즉 당시 정치상황이 그를 관직애 머물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낙향을 결심하면서 정몽주에게 자신의 뜻을 먼저 전한 것으로 보인다. 박익은 團隱에게 준 시에서때) 자신의 뜻을 다음과 같 이 밝히고 있다 閒見先天事 榮名흩世間 지난 날의 일들을 듣고 보고하니, 영화롭던 이름은 세간 의 욕이로구려 莫言心內思 不似早찮山 마음 속 깊은 생각 말할 것 없이, 일찍이 산으로 돌아감 만 못하리. 이렇게 낙향한 박익은 1년 남짓 고향에 머불고 있었다. 이 사이에 정계는 이성계세 력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 정몽주가 그 구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윤이 · 이초 39) r松隱先生文集』 권 1, 詩, 感|혔 40) 위 의 책 , p.명횟!’園隱 1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