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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 백남천 장로는 풍운감도는 구한말 1888년 1월 1일 경북 경산군 용성면 송림동에서 수원백씨 중시조 昌稷(창직)공의 27세손인 龍達(용달)공과 자당 안순이 여사 사이에 4형제 중 장남으로 출생하시었으니 자는 성숙 호는 석천이시다. 장로는 기골이 장대하시고 성품이 활달 사소한 일에는 구애를 받지 않으시었다. 유시에 한학을 수학하시고 대구계성학교를 졸업 후 청운의 뜻을 품고 1910년 북경대학으로 유학 상해와 국내의 애국지사들과 유대 독립운동 전선에 투신하시었다. 대학졸업후 귀국하여 모교인 계성학교에서 봉직 교감을 역임하시었다. 대구남산교회 장로로 계시면서 기미독립운동 직전인 2월 상해로부터 귀국한 弟 남규 김규식 박사 부인 김순애 동경에서 파견된 김마리아 서울서 온 이갑성 대구의 서병우 이만집 등과 남산교회 지하실에서 회동 거사를 숙의 항일의 거점이 된 봉직 중인 계성학교를 독립운동 대구본부로 정하고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를 등사하여 대구와 인근 칠곡 인동 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