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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렌즈로 '망선루 이전 복원기'는 촬영이 가능했다.
예부터 명승지에 인걸이 나고 인걸이 나고모이는 곳에 樓亭(누정)이 자리하며 누정이 있는 곳에 詩文(시문)과 풍류가 있어 왔다.
山紫水明(산자수명)한 우리 고장 선비의 터에 어찌 누정이 한 둘이리오. 일찍이 고려 시대 관아의 부숙 누정으로 오늘날의 망선루인 聚景樓(취경루)를 세웠다. 신중동국여지승람에 고려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의 침입으로 이곳 청주에 피난해 있던 공민왕이 같은해 11월 난이 평정되자 이를 기념해 치른 과거시험의 합격자 이름(搒, 방)을 이곳에 붙였다 한다.
이후 조선조 세조 7년(1461) 목사 李伯常(이백상)이 중수하고 韓明澮(한명회)가 편액을 고쳐 망선루라 하여 오늘에 전해왔다.
1922년 일제에 의해 이 누대가 헐릴 운명에 처하자 청주 청년회가 주관하여 1923년 당시 청주읍교회 현 제일교회로 이전하였으니 이는 곧 무언의 항일운동이자 청주시민의 문화저항 운동이었다.
이전된 망선루는 민족교육의 도량으로 활용되었으며 해방 후에도 육영의 장소로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고 1982년 12월 17일자로 우리도 유형문화재 제110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 속에 부식이 심해져 붕괴 위험이 있으므로 19999년 10월 이 건물을 해체하여 충실한 고증을 통해 정면 5칸 측면 3칸의 누각 형태의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여 2000년 12월 옛 충청병영터인 이 곳 중앙공원에 옮겨 세웠다. 이는 우리 청주시민의 전통문화 계승에 대한 굳은 의지의 표현이며 청주인의 자금심의 발로이다.
자손만대에 물려줄 민족문화의 이전을 마무리하면서 청주시의 무궁한 발전과 전 시민의 洪福(홍복)을 하늘에 우러러 축원하는 바이다.
2000년 12월 청주시장 나기장 짓고 김동영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