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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인동장공 덕관 묘비명 공은 1887년 4월 7일 안성군 원곡면 내가리에서 부친 장원보 씨의 장남으로 출생하시였다. 유시로부터 호담한 기품과 비범한 용기는 중에 특출하시였으니 었지 국치민욕의 설분이 없을손가. 항시 국권회복을 염원하든 차에 1919년 기미 3.1운동의 함성이 나자 공은 본적지 원곡면내 동지들을 규합하시였다. 동년 4월 1일 사전조직된 천여 군중이 원곡면 소재지로 운집하는지라 공은 선두에서 적수공권이나 봉화 많을 들고 인근 양성면으로 진격하여 일제 통치기관인 면사무소 경찰관 주재소 우편소 등을 파괴충화하고 왜인 등을 완전 축출하였으니 이 었지 독립투사의 장거가 않일까보냐 연이나 불행히도 왜적에게 피체되여 무수한 악형 끝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3개 성상의 옥고 생활을 하시였으니 시에 공은 33세시였다. 이 엇지 통탄지사가 않이리요. 근세에 번영된 조국광복과 더부러 3.1운동 독립유공자로 발탁되시여 1983년 8월 31일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받으시니 이는 민족의 귀감이요 자손만대의 영광이 않이리요. 오호통재라. 공은 조국광복의 기뿜도 못보시고 3남을 남기시며 1938년 12월 16일에 53세를 일기로 졸하시다. 배위 양천허씨는 1886년 4월 8일 생이시며 1964년 5월 24일 졸하시니 이곳 만년 유택에 합봉 영면하시도다. 명왈 우국충절은 만세귀감이요. 독립유공은 다자다손 꽃피우네. 서기 1984년 7월 일 경주후인 이종두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