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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극용 독립운동가 숭모비
방극용 열사는 독립운동가로서 1894년 11월 20일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입암리에서 아버지 방상원과 어머니 해주오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하 1919년 3월 1일, 서울을 시발점으로 국권회복과 자주독립의 염원을 담은 독립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이곳 남원지역에서도 같은 해 4월 4일 남원 장날을 기하여 대대적인 독립 만세운동에 동참하였던바, 그 선봉장은 방극용 열사였다. 당일 방극용 열사를 선두로 형갑수, 유창근 등의 애국지사와 더불어 1,000여 군중들이 남원 광한루 광장에 모여들었다.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 남문거리를 지나 때마침 열린 남원시장 장터를 향하여 돌진해 나아갔다.더욱 불어난 시위 군중들이 일본군경 검문소에 이르러 더 큰 소리로 만세를 외치자 일본 군경들이 시위대를 향하여 무차별 사격을 가하였다. 총성에 놀란 군중들이 이리저리 흩어지기 시작했으나 방극용 열사를 포함한 네 분의 열사들께서는 만세를 부르며 더욱 꼿꼿이 나아가다가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당시 방극용 열사의 나이 25세 때였다. 정부에서는 방극용 열사의 숭고한 뜻을 기려 대통령표창 2회(1968년, 1977년)와 건국훈장 애국장(1991)을 추서하였다. 방극용 열사의 장한 기개와 숭고한 애국충정의 뜻을 받들어 그 후손들이 뜻을 모아 여기에 숭모비를 세운다.
2016년 8월 27일
애국열사 독립운동가 남양방공 극용 후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