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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확(安廓) 호 자산 1886 ~ 1946 서울
항일기의 국학자, 훈민정음의 악리(樂利) 기원설 제시 민족문화의 장점 발견이 곧 독립의 길이라는 신념으로 국학연구에 몰두했고, 고구려 문학/시조/향가/미술사 등에 관한 연구활동을 펼쳤다.
1902. 경성관립중학교 입학
1904. 국학연구 시작
1910, 마산창신학교 근무
1914. 창신학교 교가 작곡
1916. 조선국권회복단 마신지부장 맡음
1917. 〈조선문법〉을 펴냄
1919. 기미만세의거(3.1운동때) 마산시위 주동
1929. 훈민정음 악리기원설 제기, 가시(歌詩) 갈래 설정
1934. 진단학회찬조위원, 창씨 개명 거부
1926. 급환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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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마산(馬山) 창신학교(昌信學校)의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 대한 민족의식의 고취에 힘쓰고 있던 중, 1915년 음력 1월 15일 경북 달성군(達城郡) 수성면(壽城面) 소재 안일암(安逸庵)에서 시회(詩會)를 가장하여 비밀결사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이 결성되자, 마산(馬山)지부장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20년 12월 2일 서울에서 전국 각 청년회 조직들의 연합체로서 조선청년회연합회(朝鮮靑年會聯合會)가 발족할 때에 상무집행위원으로 선임되어, 교무부(敎務部)를 맡아 계몽 월간지 「아성(我聲)」을 발간하는 등 회세(會勢)의 확장에 힘썼다.
또한 「조선무사영웅전(朝鮮武士英雄傳:1919)」, 「조선문명사(朝鮮文明史:1923)」 등 국학관계의 저술 및 연구 활동을 통하여 민족문화의 보전과 발전에 큰 공적을 남겼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