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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외서면 이천리는 우리 고장 상주의 국채보상운동 발상지이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1월 29일 대구에서 서상돈, 김광제와 상주 출신 강신규 선생 등 16명의 애국지사들이 발의하여 같은 해 2월 21일 대구의 북후정에서 대구군민대회를 시작으로 전국에 확산된 국권회복운동이다. 이 운동은 일제가 조선의 경제권을 침탈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준 나라 빚 1,300만원을 2천만 동포가 3개월간 담배를 끊고 저축한 돈으로 경제적 주권을 회복하자는 애국운동으로서, 고종황제로부터 서민제중과 해외동포에 이르기까지 의연금 모금의 물결이 온 나라에 넘쳤다. 상주의 국채보상운동은 대구군민대회 직후 '외서면 유천동 국채보상 성명 성책"이 착성되여 이 마을 주민 41명과 이호서당이 16원 44전의 의연금을 출연한데 이어, 3월 3일에는 대구의 국채보상금 수급소로부터 상주 외서 이하리(오늘의 이천리) 국채보상소로 공한이 내려졌으니 이 마을이 상주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이었음을 말해준다. 다음 달 4월 9일자 대한매일신보에는 박정준과 김개익 공이 발기한 '국채보상상주의무소 취지서' 제하의 기사가 실렸는데, 그 절절한 애국심이 담긴 글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하였다. 발기인 두 분 중에 김재익 공은 이 마을에 세거하였기 때문에 상주국채보상수금소가 이 마을에 설치된 것으로 짐작한다. 신문에 상주의 취지서가 알려지고부터 외서면을 비롯하여 상주읍내와 청리면, 화북면, 내북면 등지에서 수천 명의 주민과 문중, 그리고 마을과 단체에서 1,172원 22전을 의연금으로 내 놓았다. 외서면은 상주국채보상소를 설치한 이 운동의 발상지로서 면 관내 전 지역의 주민 459명과 월산오씨 문중에서 163원 58전을 출연하여 다른 어느 면 지역보다 열성적이었다. 국채보상운동은 국가가 위기에 처하였을 때 민족적 발심으로 일어난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국권수호운동으로서 오늘의 발전한 대한민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이 운동과 관련한 이 마을의 역사적 사실은 2016년 10월 12일 사단법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상주문화원 금중현 부원장이 '상주의 국채보상운동 의연사실'이라는 논문을 통하여 밝힌 바이며, 상주인의 한 사람으로서 다행으로 여기는 한편 너무나 큰 일을 하였다, 이는 곧 유구한 이 마을 역사에 큰 자취인 만큼 후세에 길이 전하는 것이 선인들의 나라 사랑하는 뜻에 보답하는 길이라 여긴다. 이에 이정백 상주시장과 신봉철 외서면장의 성력으로 빗돌을 세우면서 상주문화원의 책임자라는 명분으로 나에게 비문을 청하여 두렵고 송구한 마음으로 이 글을 남기는 바이다. - 2017년 6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