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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경식(敬植) 호는 강와(剛窩)로 보은 강신에서 태어났으며 보통 송면헌(宋勉憲)이라 불린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비분강개하여 오적처단을 위해 유림들이 궐기할 것을 주장해고 1910년 경술국치후 두문불출 학문에만 정진하며 일제의 통치에 굴복하였다. 1919년 스승 이근원의 소상때 고한 제문에 '국망위지통(國亡爲至痛)'등의 문구를 사용하여 일본경찰에 잡혀갔고 옥중에서도 일본경찰에 굴복치 않고 망국의 한과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시로서 노래하였다.묘는 수한면 교암리에 있고 논이 넓게 펼쳐진 갈평리에 강와송선생강도유허비(剛窩宋先生講道遺墟碑)와 이열제(怡悅齊)가 있으며 저서로 강와집(剛窩集)이 있다. 출처 : 보은신문 1995.08.그후 묘소는 대전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