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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내용 : 하석환은 어렸을 때부터 효자로 소문이 났는데, 1905년(광무 9) 아버지의 상을 당하였다. 아버지의 묘를 쓴 곳이 깊은 산중이어서 시묘살이 중에 온갖 짐승들이 괴롭혀서 여간 딱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커다란 호랑이가 찾아와서 신변을 보호해 주었다고 한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하석환은 대문에 “李生家之民 河錫煥(이생가지민 하석환: 이씨왕조의 백성 하석환)”이라는 문패를 달고 두문불출하며 세금 또한 내지 않았다.
그리하여 음성경찰서에서, “너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 천황폐하의 홍은을 감사히 여기지 않으니 고약한 놈이다. 너 같은 놈은 죽어 마땅하다.” 하면서 으름장을 놓고 협박하며 고문까지 하였으나 하석환은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결국 유치장에 갇히게 되었는데, 하석환은 그날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단식투쟁을 하였다. 경찰서장은 속으로 ‘제놈이 며칠이나 갈라고.’ 하면서 내버려 두었는데, 하석환은 5~6일이 지나도록 단식을 하더니 큰소리로, “이 도적놈들아!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 더러운 곳에 가두었느냐.” 하면서 소란을 피웠다. 결국 경찰서장은 하석환이 혹시나 유치장에서 죽으면 민심이 동요할 것을 걱정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얼마 후 하석환의 집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등 민심이 예사롭지 않게 돌아가자, 경찰서장은 또다시 하석환을 잡아다 유치장에 가두었다. 그렇다고 일제에 고분고분해질 하석환이 아니었다. 이렇게 두서너 번 가두고 풀어 주던 경찰서장은 결국 하석환을 내버려 두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후 몇 해 뒤인 1918년 결국 병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출처 : 음성투데이(http://www.es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