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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살리라 |321| 1-3-2. 2단계 투쟁 (1998. 6. 1 ~ 10. 30) 1단계 투쟁 이후 곧바로 2단계 투쟁으로 돌입하였다. 주1회 금요일(고난일) 서울역에서 캠페인을 진행하고 이와 더불어 의문사를 야기한 국정원, 기무사, 대공분실 등에 항의 방 문하는 투쟁과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로 하였으며 운동 단체들을 적극적으로 참 여시키는 입체적인 캠페인을 하기로 하였다. 2단계 캠페인은 예정보다 더 길게 진행되었다. 그 이유는 당초 준비하였던 대통령 면담 을 통한 확약을 받는 일이 예정보다 늦어진 이유도 있었고, 법안 성안도 늦어진 이유도 있 었다. 2단계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계획하였던 대로 의문사를 야기한 공안기관들에 대한 항의방문 투쟁을 병행하였다. 먼저 국방부는 5월 25일에 갔다 왔고, 6월 12일에는 안기부 앞에서 항의방문 투쟁을 하였으며, 기무사 항의방문 투쟁도 6월 19일 진행하였다. 그런데 6월 26일 경찰청 항의방문 투쟁을 하다가 의문사 유가족 등 12명이 강제 연행 당하는 사 태가 발생하였다. 의문사 유가족 등은 각 경찰서에 분산되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하였고 다음 날 즉심에 회부되어 벌금 3만원씩을 납부한 뒤에 풀려나게 되었다. 이 문제를 그대로 묵과하면 기관들에 대한 항의 방문 투쟁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투쟁이 위축될 가능성이 많기에 집회신고를 내고 7월 1일부터 경찰청 앞에서 경찰청장 사과를 요구하며 항의집회를 연일 계속 하였다. 날씨는 무더운데다, 소나기도 퍼 부었고, 경찰청장은 사과 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경찰청에서는 집회방해만 하는 일이 반복되자 의문사 유가 족 등은 그만 끝내길 원하였다. 그런데 거기서 중단하게 되면 정말 향후 투쟁 자체가 위태 로울 상황이었기에 청장의 사과를 받을 때까지 계속 강행하기로 하였다. 언론에 취재를 요 청하여 7월 10일「“의문사 규명”경찰청장 면담 집단 요구에“신고 않고 시위하였다”…전 원 즉심에 넘겨」라는 박스기사가 보도 44) 되자 국면은 바뀌기 시작하였다. 당장 보안국장이 |32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단계로는 법제정이 될 때까지 농성투쟁을 국회 앞에서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준비 조직 단계를 충분히 가져 투쟁을 시작한 이후 차질을 가져오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기로 하 였다. 예정대로 1단계 대국민캠페인은 진행되었다. 서울역 광장에 걸개그림과 열사, 의문사 대 자보 등을 전시하고 영정 사진들을 깔아 놓고 마이크로 호소를 하고, 공연을 하기도 하였 으며, 한편에서는 서명을 받아가며, 장대비가 억수처럼 퍼부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행하 였다. 웬만한 단체에서는 1년에 한 번 할까하는 행사를 매일같이 진행한 것이다. 그리고 서 울역 거점 투쟁 외에도 크고 작은 집회마다 찾아다니며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특기할 만한 일은 당시는 IMF 시기로 서울역 광장에는 노숙자들이 많이 있었다. 의문사 유가족 등이 캠페인을 하는 것을 보고 노숙자들이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넣어 둔 지폐를 꺼내 모금함에 넣거나, 의문사 유가족들에게 음료수를 사다 주기도 하였다. 돈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렇 지도 않은 푼돈에 불과 했겠지만 노숙자들에게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을 액수였다. 그리고 허름하게 옷을 입은 사람들은 바삐 지나가면서도 서명에 참여해 주거나 모금함에 돈을 넣 는 반면에, 옷을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은 고개도 한 번 돌리지 않고 찬바람을 일으키며 지나 가 버리기 일수였다. 이러던 중인 1998년 5월 민변에 아래와 같은 골자로 법안 성안을 공식 요청하였다.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 법안과, 진상규명 법안 [1)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을 포함한 과거 청 산 전반을 다루는 방안, 2)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을 중심으로 하는 방안 중에서 검토하여 특 검제 성격] 민변에서는 이 요청을 수락하여 7월 경 이상훈, 윤기원, 정태상 변호사로 팀을 구성하여 법안 성안에 착수하였다. 그런데 민변에서 진상규명 관련 방안을 검토한바, 과거청산 전반 을 다루는 진상규명법은 현실적으로 통과되기도 어렵다하여 의문사 진상규명을 중심으로 하는 법안을 성안하게 되었다. 44) 서울신문, 1998.7.10, “유가협‘이유’있는 빗속 시위”제하의 박스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