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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지역에 가장 많은 97회나 침입하여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박익의 고향인 밀성군 에도 우왕대에 왜구가 자주 침입하여 노략질하고 있었다 몇 사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O 짧가 密城을 침입하여 노략질하고 관청을 불사르고 사람과 물품을 약할해 갔 다(1'고려사』 권 133, 열전 46, 우왕 즉위년 12월) O 懷가 密城을 불태워 노략질하니 萬戶가 막지 못함으로 장군 崔仁哲을 보내어 가서 按問하고 백관을 시켜 각각 便民策을 진술하게 하였다(위의 책, 우왕 l년 1월) O 짧가 쯤州 평珍縣에 침입하여 노략질하고 또 I成安·東菜·梁1'1‘1. 彦陽·機張· 固城 · 永善 등의 곳을 불사르고 약탈하였다(위의 책, 우왕 2년 11월 신사) O 候가 륨州 班城댐에 침입하고 또 前州 · 會原 · 義昌 등의 縣에 침입하여 불사르 고 노략질하여 거의 남김이 없었다.(위의 책, 우왕 2년 11월 병술) O 짧가 密城那과 東策縣에 침입하였다.(위의 책, 우왕 2년 11윌 기해) O 짧가 前州와 쫓財*에 침입하여 노략질하였다 ... 짧가 힘州 · 梁州 · 密城 등의 곳에 침입하여 불사르고 노략질하여 거의 남김이 없었다.(위의 책, 우왕 3년 4월) O 候가 密城에 침입하여 촌락을 노략질하고 보리[짧]를 취하여 배에 섣어 가 無A 之境을 밟는 것과 같이하였다. 安東助戰元帥 王좁이 쳐서 물리쳤다(위의 책, 우 왕 3년 5월) O f委가 密城那에 침입하니 知兵馬事 李興富가 3명을 목 베었다 (r고려사』 권 134, 열전 47, 우왕 7년 11월 병술) 위에 보이는 바와 같이 왜구는 우왕대에 자주 밀양을 비롯한 그 인근 지역에 출목하 여 노략질 하고 있다. 특히 우왕 2년에는 밀양을 비롯해서 경상도 연안의 전 지역이 침탈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왕 3년에는 보리 수확기인 5월에 침입하여 모두 배에 실 어갈 정도였다 무인지경을 밟듯이 왜구는 촌락을 유련하여 곡식을 노략질하고 인명을 살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익은 바로 왜구의 침탈을 받는 상황 속에서 지방관, 그것도 고향인 밀양 가까이에 있는 지방관을 역임하면서 왜구 토벌에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 동경판관으로 있을 때, ‘勳農防떻使’를 겸했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박익은 우왕 13년 8월 동경판관을 끝으로, 중앙 관직을 맡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 이 司宰少藍이었다. 司宰좋는 魚梁과 川澤을 관장하는 재정기구로,26) 少藍 위로는 判 26) fi'고려사』 권 76, 지 30, 백관 1, 司宰좋 1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