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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계몽운동의 산실 '대구광문사'
대구의 광문사는 사장 김광제, 부사장 서상돈 등이 참여하여 1906년 1월, 한때 황국협회의 기관지였던 시사총보(時事叢報)를 접수하여 시대에 맞도록 개화자강 노선에 따라 개편한 출판사였다. 이후 면목을 일신하여 장지연 등의 지도하에 외국의 신학문을 도입하고, 다산 정약용 등 실학자이 저서를 번역, 편찬 민족의 자강의식을 고양시키고, 나아가서 국권수호를 위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던 출판사였다. 이 대구광문사 안에 문회(대구광문회)가 조직되어 신교육구국운동의 추진단체가 되었다. 신교육운동은 대구에 중학교과정의 사립보통학교를 설립하고, 경상북도 내 41개 군에 사립소학교를 세운다는 원대한 계획이었고, 회원만도 각 군 유지 4~5백명이나 되었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의는 1907년 1월 29일 대구광문사에서 대구광문사 문회의 회명을 '대동광문회'로 개칭하기 위한 특별회의가 열렸는데, 이 회의를 마친 자리에서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보상운동을 전격 제의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서상돈의 발의에 참여한 회원들은 만장일치로 찬동하고 그 자리에서 곧 담배를 끊기로 하고, 의연군 2천여 원이 각출되었다.<자료제공 : 국채보상운동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