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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1917년 2월 24일 서귀포시 법환리 388번지에서 아버지 변용화씨와 어머니 강정호 여사 사이에서 2남으로 태어나 곡산강씨 덕선지 3녀 병화 여사와 결혼하였다. 부친 용화공께서는 일찍이 법환리 경민장으로 계시면서 마을 발전을 위해 큰 업적을 이룩함은 물론 밖으로 마을의 명성을 크게 떨쳤으며 형성익공께서는 해방 후 대규모 주물 생산 업체인 국제산업사를 세워 제주도의 근대화와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한편 법환리 전기 가설사업을 추진하여 도내 최초의 전기 마을 조성에 공헌하셨다.이런 환경에서 나고 자란 변성현 선생은 왜정의 압박과 탄압을 받으며 기아와 무지 속에서 처참하게 살고 있던 당시 농촌의 현실을 직시하여 1934년 6월, 독서회와 골갱이회를 조직하고 야학을 시작하였다. 주경야독으로 힘쓰며 협동심으로 뭉친 모임은 꾸준히 성장해 어느새 일본의 무단통치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고 이를 경계한 일본경찰은 선생에게 즉시 독서회와 골갱이회를 해산하도록 명령하였다. 선생은 이에 응하지 않고 범섬으로 건너가 토론회를 열어 제국주의의 폭정을 고발하고 전쟁 반대운동을 벌이는 등 갖가지 항일 운동을 전개했다. 이에 일본 경찰은 선생을 체포한 후 엄청난 고문을 가한 후 재판에 회부했다. 징역 1년을 복역한 후 1937년 6월, 형기 만료로 출소한 선생은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24세 약관에 유명을 달리했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에게 2006년 8월 15일에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 지역의 보다 나은 삶을 애썼던 한 집안의 뜻을 기리고 우리들의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법환동민의 뜻을 모아 오늘 이곳에 기념비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