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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83년 강릉고를 졸업하고, 그해 서강대 물리학과에 입학하였다. 당시 교내에는 경찰이 상주하고 있었고, 동지는 장구장단을 맞추는‘탈’에 가입하였 다. ’84년 교내 경찰이 살아지며서 동지는 활기를 찾기 시작하였다. ’84년 영등 포에서 노동절 가두투쟁으로 붙잡혀 훈방이 되는 등 적극적인 민주화운동에 투 신하였다. ’86년 말 역사에 대한 진보의 희망을 노동자계급에서 발견한 동지는 병역을 거부하고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준비하였다. ’87년 극심한 산업재해로 1년 에 잘린 손가락만 한 가마씩 나온다는 경동산업에 입사, 풍물패 활동과 민주파 모임인‘디딤돌’의 열성적인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동지는 당시‘유현상’ 이라는 가명으로 현장 활동을 하였는데, 서강대에서 풍물패 활동을 하였던 경험 과‘미키마우스’라는 불리 웠던 밝은 미소와 얼굴 덕분에 경동산업의 노동조합 민주화 조직인‘디딤돌’과 풍물패 활동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활동던 동지는 회사측의 탄압으로 ’89년 봄, 결국 해고되고 말았다. 그러나 회사는 동지에 대한 해고에 그치지 않고, 디딤돌 자체를 와해시 키려고 하였고, 노동조합 대의원 선거를 앞두고 디딤돌 회장단에 대한 징계회부 를 자행하였으며, 이에 디딤돌 회원들과 조합원들의 농성으로 결국에는 두 명의 동지가 분신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동지는 ’90년 초까지 인천지역해고자협의회 실무자로 근무하며 복직투 쟁을 전개하였고, ’90년초 인천민중교육연구소와 ’92년 인천민중연합 상담실 실 무자로 근무하였으며, 병역징집 거부투쟁을 계속하였다. 이로 인해 노동조합 방 문조차도 커다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어려운 지경에 놓였다. 이후 결혼식을 올 리며 노동자의 삶을 결의하던 동지는 신혼여행에서 불의의 조난사고를 당하여 운명하고 말았다. 동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추모집「함께하는 최웅」을 1997년 발간하였다. 윤성씨! 나의가까운동지가될수있었던 당신을대하고보니 저는그동안에가졌던안타까움이 용기로마음에새겨지는것을느낍니다. 최 웅(당시29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4년 5월 1일 강원도 강릉 출생 1983년 강릉고 졸업, 서강대 물리학과 입학 동아리‘탈’연구회 가입 활동 1986년 노동운동을 위해 인천으로 이전 1987년 경동산업 입사, 풍물패 활동 및 디딤돌 소모임 활동 1989년 경동산업 해고, 인해협에서 간사 1990년 인천민중교육연구소 실무 간사 1992년 인천민중연합 노동자위원회 활동 1993년 인천민중연합 부설 우리노동상담실 노사부장 1993년 10월 26일 신혼여행 중 사고로 운명 끝내살리라 |31| |3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노동 당신이생각했던노동해방과 혁명의길을제가걸어갑니다. 나에게있어보이지않는동지로 용기로함께할것을믿습니다. - 이동희의「함께하는최웅」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