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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선생〉 가포르-안도를 거쳐 지중해를 건너 러시아어1 들어가 고종 황제의 친서를 전달한 이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기념식에도참석하였다.두차례의외유를통해서 구의 근대식 문물을 경험한 민영환은 고종 황제에게 정치. 군사 제도의 근대적 개혁을 건의하였으나 실제 반영되지 는 못하였다. 그는 독립협회 등 사회단체와 재야인시들과 교유를 통해서 지주민권운동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그가 관직에 있을 때 한반도 주변 정세는 시시각각으로 나빠지고 있었다. 청일전 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결국 1905년 을시늑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한국의 자주권을 박탈하였다. 충정공은 원임 의정대신 조병세폈漢世)등 문무백관들과 상 소를 올려 조약에 찬동한 5적의 처행과 조약의 파기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이미 대 세가 기울어지자 결국 1905년 11월 4일 새벽 국민과 각국 공사에게 고하는 유서 세 통을 남기고 단도로 자결하였다. 그때 나이 45세였다. 그의 자결 소식이 전해지자 조맹세를 비롯한 참판 홍만식 · 학부주사 이상철 등 많은 인사들도 자결을 하였고, 그의 인력 거꾼도 목숨을 끊어 일제 침략에 항거하 였다. 그의충절을기리기 위해후히케 예 장하였고,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대신υ〈 뜰輔底l뿔禮大夫議政大~)으로 추량되었 으며, 의절의 정문도 세워졌다. 1962년에 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었다. c、 참고문헌 • 이민수 역 민흥기 펀 「민충정공유고J, 일조각. 1996. 흩포를l • 민영환, 조재곤 역, r해전추범카896년 민영1환의 세계일주」, 책과함께 2007. 찾Ofl~는길 • 대중교통 수원 • 수지행 버스 21번, m 번, 1001번, 2002번 타고 구성초등학교에서 하차 • 자기용 미북삼거리(용구대로j에서 경찰대책, 법무연수원 방항 - 구성초등학교 옆길로 좌회전 (민영환 선생 묘묘지판) (-、주변불거리 • 용인항교 • 용인시 구성구 언님동 영5 • 효택미술관 용인시 수성구 미북동 73-1 ‘g 031-28운6418 켠역얼주요유적지해실 · 13